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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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9. 20:37 카테고리 없음



너와 나의 사랑은 모두 소중하다


흔히 말했다. ‘8극장은 뮤지컬 같은 음악을 들려준다고. 나는 오히려 연극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뮤지컬적인이란 수식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서사성 강한 가사, 전달력 좋은 보컬의 목소리, 통통 튀는 멜로디와 흥겨운 무대, 그리고 한편의 예술작품으로서 충분히 완성도 높은 한 장, 한 장의 스튜디오 앨범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수식어는 그들의 음악을 폄하하는 단어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뮤지션들이 싱글 단위의 음악 생산 속에서 이슈 몰이와 빠른 반응에 집착하고 있는 요즘, 굉장한 칭찬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내 입장에서는 큰 칭찬을 해주고 싶은 미덕이라는 말이다.


밴드는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2011)로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것이 소설 <보물섬>이든, 만화책 <원피스>든 그 시절 우리가 꿈꾸었던 환상적인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좋은 기억은 첫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콘셉트로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된 그 첫 앨범 속에서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양화대교>(2013)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동화 같은 저 바다를 노래하던 이들이 2년만에 현실 세계로 내려온다. 그들은 <9번 출구> <양화대교>라는 일상적인 노랫말로 어른이 되어 인생을 노래한다. 언젠가 이 앨범의 후반부 6~10번 트랙이 비틀즈의 <Abbey Road> 후반부 <Golden Slumber> 메들리를 생각나게 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만큼 좋았지만, 한편으로 내 어린 시절의 꿈이 갑자기 불쑥 어른이 되어 각박한 현실세계에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밴드 멤버들이 공연 때마다 대박이라고 팬들을 세뇌시키던 새 스튜디오 앨범 <언제나 나는 너를 생각해>(2016)는 환상과 인생을 넘어 사랑을 노래하는 밴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제의식은 여전히 뚜렷하다. 밴드는 일관된 태도로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랑노래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관한 노래이다. 로큰롤을 바탕으로 로커빌리, 컨트리, 사이키델릭, 선샤인팝 등 장르적인 확장이 가장 눈에 띈다. 사운드의 깊이라는 말을 종종 쓰게 되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도 분명히 앞선 두 앨범보다 진일보했다. 밝고, 명랑하지만 몇몇 트랙에서는 애절한 발라드보다 더 애잔한 느낌을 준다. 아마 메이저 코드로 먹먹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분야에서 제8극장을 따라갈 밴드는 많이 없을 듯하다.


그래 사랑이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사랑, 사랑, 사랑을 이야기할 줄은 사실 몰랐다. 앨범의 첫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이들은 말한다. 사랑에는 남녀노소가 없고, 국경도 없고, 인종도 없다. 그냥, 사랑에는 아무런 걸림돌도 거리낌도 없어야 한다. ‘나는 니가 좋다는 말이 12개의 트랙을 넘나들면서 백 번도 넘게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사실 연주도 훌륭하고, 녹음과 믹싱도 좋고, 앨범의 밸런스도 멋지지만, 그냥 이 앨범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앨범이 <양화대교>(2013)보다 먼저 나왔다면 오히려 환상, 사랑, 그리고 인생으로 이어지는 연작으로서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앨범을 끝까지 듣고 나니, 그냥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앨범의 순서와 상관없이 처음이든 끝이든 ‘나와 너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은 소중하다’, 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사실 나는 제8극장의 라이브도 종종 가는 편이고, 8극장 본인들 역시 라이브가 재미있는 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음반의 완성도가 그들의 장기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라이브도 좋지만, 이렇게 정제된 사운드를 음반으로 몇 번이고 듣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http://music.bugs.co.kr/album/20031312?wl_ref=list_ab_01

posted by rubber.soul
2011. 9. 11. 01:22 카테고리 없음


경험하지 못한 추억을 진짜라고 여기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제8극장은 이름만큼이나 특출나다. 혹은 특이하다. 록큰롤을 기반으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올드팝과 뮤지컬과 디즈니풍의 멜로디와 클래시컬한 구성들을 놓고보면 분명 현재 한국 인디 음악씬에서 유례없이 잡식성의 특이한 밴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런 다양한 요소들을 오로지 지극의 흥겨움을 위해 잘 버무릴 수 있다는 것은 특출난 능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제8극장이라는 밴드는, 정말로 흥겹고 즐겁고 특이하고 특출났다. 사실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밴드들이 그렇듯이) 연속적이지 않은 많은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이 나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치만, 결국 밴드가 도달한 곳은 특이한 음악적 형식의 내실을 가득 채워줄 정도의 이야기꺼리. 그리고 그 이야기꺼리가 얼마나 생생한지 내가 경험하지 않고도 내가 가진 추억이라 느끼게 만들어준다. 소설보다 더욱 생생한 공감각적 스토리텔링.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에서 제8극장은 그들의 커리어에 진하게 방점을 찍었다.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기전에 지난해 발매된 EP <대항해시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앨범, 특히 <대향해시대>라는 곡은 놀랄만큼 잘만들어졌다. 가사의 힘과 멜로디에 담긴 흥겨우면서도 쓸쓸한 느낌은 정말 이 노래의 속편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다로 떠나서 어떻게 된거야?' 라던지, '보물이라도 찾은거야?' 같은 물음들이 머리속에서 떠올랐을 정도로 몰입도 강한 트랙이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을 처음 대면 했을때 해골 마크가 그려진 해적의 표시를 보았을때, 개인적으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의 속편이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앵무새 파리넬리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마초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방식으로 지나간 좋은 시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추억은 분명히 '만들어진' 것이다. 밴드의 누구도 실제로 해적이었을리 없을 뿐더러, 청자중 누구도 그러한 경험을 해봤을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한국이라는 공간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은 마치 화자와 청자가 공감하고 있는 공통의 기억처럼 마지막 트랙까지 몇 막의 희곡을 떠올리게 한다. 세밀하게 만들어진 추억의 단편들은 직설적이고 선동적이면서도 충분히 은유적이고 우화적이다. 그들이 말하고 내가 느끼는 바다는 바다이면서도 바다가 아니다. 그리고 그 많은 두려움과 기대감은 바다에 대한 기대감이면서 또한 우리 삶 속의 무언가에 대한 동일한 기대감에 대한 표현이다. 또한 수많은 협잡군과 비열한 사기꾼들은 바다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걱정하는 형제들'이 되어 스토리텔링에 빠져든다. 참으로 매력적인 경험이 아닌가? 오랜만에 느끼는 일관된 감정의 지속적인 전달이 아닐 수 없다.

진심은 무엇인가? 오로지 삶의 성찰을 통해 관조적으로 내 주변의 작은 것들부터 논해야 진심인가? 혹은 정형화된 틀로써의 형식속에서 청자가 원하는 무언가를 들려줘야만 그것을 진심어린 음악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이들의 음악이 특이한 것은 (특이 이 앨범이) 매우 선동적이며 강력한 동조를 구하는 음악이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다. 마치 40년만 먼저 발매되었다면 '금지곡'이 될 것같은 가사들은 분명히 거북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느샌가 한국 인디씬의 좋은 노랫말들은 관조적이고 소비자 중심의 감정전달, 그리고 청자를 향한 무한한 편안함과 구애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랫말은 불편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며 이야기중심적이고, 게다가 선동적으로 청자의 동조를 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멜로디의 부수적인 포현방법으로써의 가사가 아니라, 오히려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음악적인 방식을 채용한 것처럼 던져지는 트랙들은, 불편하지만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소설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문학적인 이기성, 혹은 작가의 자존심과도 같다. 동조를 바란다면 가끔은 동조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 편안한 화자들에게 익숙해져있더라도, 가끔은 괜찮지 않은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믹싱은 매우 만족스럽다. 밴드말처럼 빈티지의 복각이 아닌, 제8극장의 색깔을 보여주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트랙인 <대항해시대>의 믹싱은 탁월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EP 버전이 더 매력적이지만) EP 버전이 첫 트랙으로써 닻을 올리는 새벽의 설레이는 느낌을 보여주었다면, 앨범 버전은 마지막 트랙으로 다시한번 바다를 향해 석양을 맞으면서 떠나가는 느낌이 살아 있다. 다소 연극적인 장치들(가사와 코러스 등)과 과장된 곡 진행만으로 이들의 진심을 판단하는 愚(우)를 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한편의 연극을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청자가 공감에 대한 일말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냥 나와 관계 없는 한편의 상상의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자.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꽤나 멋진 음악,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