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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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27. 18:34 카테고리 없음

몇해전, 전차남(電車男)이라는 일본 드라마는 수많은 오덕들의 공감을 한몸에 받으며, 영화로, 책으로 그리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써의 아키바계(アキバ系)를 보여주고 모에(萌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많은 이슈를 낳았다. 그 드라마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들이 하나 더 있으니, 엔딩곡을 부른 サンボマスター(삼보마스터)가 바로 그들이다. "世界はそれを愛と呼ぶんだぜ(세상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구)"라며 21세기에 당치도 않게 사랑과 평화를 연호하던 이들은 그간 알만한 사람만 알던 실력 출중한 밴드에서 일약 아키바계의 대변인쯤으로 부각된다. (물론 본인들이 원하던 것은 아닐것이다) 물론 노래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들에게는 골수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바로 록의 진정성이 없어졌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2003년 "新しき日本語ロックの道と光(새로운 일본어 록의 길과 빛)"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메이저에 데뷔한 이들의 음악은 충격적이었다. 전대의 일본 밴드 음악들(真心ブラザース, 奥田民生, ガガガSP 등)이 가졌던 일본 록을 향한 열정과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한 이들의 음악에는 "날 것"의 폭발적인 생명력이 있었다. 절규하는 보컬, 부스터(이펙터의 종류)만으로 그려내는 살아있는 기타음, 베이스와 드럼의 리드미컬함은, 예쁜 음악, 잘 만들어진 상품에 익숙해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가사. 한국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영어 가사가 주를 이루었던 (그건 밴드 음악씬도 마찬가지) 일본에서 "そのぬくもりに用がある(그 따스함에 용무가 있다)" 따위의 고전적인 제목과 그에 상응하는 일본어 가사로 열창하던 그들의 모습은 (당연하지만) 많은 골수팬을 낳았다.

하지만, 두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サンボマスターは君に語りかける(삼보마스터가 너에게 말을 건다)"와 세번째 앨범 "僕と君の全てをロックンロールと呼べ(너와 나의 모든 것을 록큰롤이라 부르자)"를 거치면서 밴드는 분명히 변했다. 특히 밴드 최대의 히트곡 "世界はそれを愛と呼ぶんだぜ(세상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구)"가 수록된 세번째 앨범에서 그들이 보여준 것은 데뷔 초기의 폭발적인 생명력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의 음악이었다. 물론 그들의 장기인 날카로운 외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의 지향점은 "일본어 록의 부활"이라는 외로운 길에서, "사랑과 평화를 위한 만인의 록큰롤"의 전파로 바뀌어 있었다. 혹자는 (혹은 대다수의) 팬들은 이러한 변화를 매우 폄하했다. 록의 혼이 없어졌다느니, 진정성이 결여된 상업 음악이라던지. 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과연 그들이 세장의 앨범을 거치면서도 첫번째 앨범에서 보여준 원초적인 날 것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그들과 팬을 위해 올바른 일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변화가 충분히 반가웠다. 세번째 앨범에서 난 그들에게 최대한의 만족감을 얻었다. 한곡한곡이 멋졌다.

물론 이후에 발매한 두장의 앨범 "音楽の子供はみな歌う(음악의 아이들은 모두 노래하지)"와 "きみのためにつよくなりたい(너를 위해 강해질꺼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과 평화를 위한 만인의 록큰롤"의 연장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곡도 좋지 않은 곡도 있을 뿐이다.

데뷔 10년을 맞은 이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0년 10월 3일 시모키타자와의 클럽 쉘터에서 "あれから10周年オーディションライブ(그로부터 10주년 오디션 라이브)"를 개최한다. "이제는 오디션을 볼 자신이 생겼다"는 이유에서 낮 시간에 오디션을 빙자(?)한 공연을 했고, 그 음원은 온전히 이번 맥시 싱글에 실렸다. 총 8곡이 수록되었으며, 그 속에는 초기 그들이 가졌던 넘치는 생명력을 되새길수 있는 곡들도 있다. 팬으로써는 감사한 일이다. 싱글따위에 8곡의 라이브 음원을 수록해주다니 말이다.

10년. 그들은 변했다. 일본어 록의 부활을 외치며 거창하게 등장한 그들은 이제,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한 록큰롤을 들려주기 위해 지금을 살아간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러한 변화가 좋다. 충격적인 데뷔 앨범에는 당시의 그들만이 보여줄수 있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여전히 그것을 보여줄 의무는 없다. 아니,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폭발력 대신 다른 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들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면 된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그들도 존 레논처럼 "사랑과 평화"를 전세계적으로 외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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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한가했는지 글이 길어졌음. 삼보마스터에 대한 과거의 몇가지 텍스트는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물론 오래전에 쓴 텍스트들이라 지금의 생각과 좀 다를지도.)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