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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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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26. 17:23 카테고리 없음


전쟁이라는 총체적 괴수(怪獸)에 대한 새로운 영화적 시도,

혹은 타국의 내셔널리즘을 대하는 우리의 새로운 인식


한 재능 있는 영국인이 지금까지 자신의 다소 환상적이고, 화려한 커리어에서 내려와 역사적 사건을 그린다. 그 역사적 사건은 마치 한국전쟁에서 흥남 철수 작전처럼 극적으로 전개된 철수 작전이다. 이 영국인이 과연 영국인들에게 여전히 좋은 기억, 민족적 단결을 보여주었던 이 사건에 대해 영국 배우들과 함께 객관적으로 영화를 찍는 게 가능할까? 물론, 영화가 항상 객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이지 않은 모든 내셔널리즘적 콘텐츠국뽕으로 불리는 요즘의 추세 속에서 과연 이 영화를 국뽕으로 부르는 게 맞을까? 개봉 전부터 잔잔하게 전쟁의 참해를 그린 역작’,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쟁 속으로 들어가다등의 수식어를 달고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92%) 등장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덩케르크(Dunkirk)’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 눈엔 세련된 국뽕으로 보였다. 아니다 영국이니까 영뽕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신문을 읽는 주인공과 맥주를 전해주는 기차 밖 사람들, 프랑스군을 위해 덩케르크에 남겠다는 지휘관, 비상탈출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독일군에게 잡히는 파일럿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에게 영뽕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영뽕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국인으로 역사적 의미를 담아 충분히 그릴 수 있는 이야기이며, 그 방식 또한 촌스러운 면이 없다. 오히려 편집은 트렌디하고, 내러티브는 없지만 공간과 시간으로 그것을 대체한다. 감동보다는 체험, 눈물보다는 긴장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쉽게 9점을 던지며 이 영화는 영뽕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면 그들의 말에는 절대 동조할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 영화가 가지는 첫 번째 의미가 영국인이 만든 찬란한 영국 역사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숱한 미사여구로 이 영화의 의미를 무시한 채, 영화사에서의 의의, 혹은 재미와 새로운 시도만으로 쉽사리 9점을 던지는지 충분히 감이 오지만,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보여 나는 제일 먼저 괴수물이 떠올랐다. 가장 최근에 보았던 안노 히데아키의 신고질라가 생각났다. 괴수가 등장하기 전, 화면에는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이 묘사되고 그와 함께 날카로우면서도 절제된 음악이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각종 재난 영화들이다. 인간 하나하나가 제어할 수 없는 총체적인 재난 앞에 무기력한 감각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런 느낌적 느낌(!)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와 같은 인디 공포 영화들도 잠깐 잠깐 뇌리에 스쳤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울렁거림, 그리고 카메라 밖에서 다가오는 공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상의 산물인 괴수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인간 대 인간의 재난을 미묘한 긴장감 속에 묘사하며, 울렁거리는 카메라 워크는 8mm 카메라가 아니라 아이맥스 카메라로 공간감 있게 화면에 담긴다. 이야기꾼인 감독 특유의 내러티브는 없지만 그 자리를 시간과 공간의 교차 배치를 통해 채우고, 아날로그 필름만의 질감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 세대에도 이런 감독을 가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라고. 그래서 그들은 주저 없이 9점을 던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스 짐머의 음악이다. 이 영화에서 감동 대신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지는 긴장감의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그의 음악이다. 그는 날카롭지만 자제력 있는 현악 편곡으로 기묘하면서도 흥미로운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마치 괴수물에서 괴수가 등장하기 전에 온 하늘이 떨리는 불쾌한 흥분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덩케르크(Dunkirk)는 잘 만든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을 뺀다면 이 영화의 평은 어떻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9점을 주며 찬사를 쏟아낼 수 있을까? 한스 짐머가 영화 내내 현악기로 표현했던 극한의 긴장감만으로 이 영화에 9점을 선뜻 내주기는 어렵다. 그럴듯한 클라이막스가 없다는 건, 신의 한 수 같은 장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친구는 괜찮냐는 길리언 머피의 말에 ''라고 대답하는 그 장면이 나에게 있어서 클라이막스였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놀란의 최고작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냥 고집스런 예술가의 세련된 장인 정신쯤으로 해두고 싶다. 물론 이건 그들이 말하는 영화사에서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일 것이다. 7/10


https://www.rottentomatoes.com/m/dunkirk_2017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