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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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 16:40 카테고리 없음


내가 만약, 그 곳에 있었더라면, 혹은 나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에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그리고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었다면. ‘만약에…’로 시작하는 얘기는 항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에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그 이야기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2011 3월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인 역시 2014 4세월호라는,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영화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이 영화가 명백하게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경험을 3년 뒤에 가졌던 한국인들 역시 일본인들이 갖는 의식의 변화를 거쳤고, 그래서 이 영화는 2014416, 점심 시간에 돈까스를 먹으며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보았을 때의 안도감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던 그 순간의 절망감을 경험한 나에게도 의미가 있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소년과 소녀가 만나고 헤어졌다가 결국 다시 만난다는 고전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사실, 오랜만에 본 2을 덜어낸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그리고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화면에, 오프닝부터 극장을 압도하는 Radwimps의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띄는 작업물로 자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본에서 사회 현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감독이 보여주지 않았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딱 맞아떨어졌다. 바로 현실감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평범한 사람들, 있을 법한 삶을 묘사하는 일상에 대한 감각만큼은 역대 일본의 어떠한 애니메이션 감독보다 탁월했다. 하지만, 감독의 일상성이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만약에로 시작하는 비일상적이기 그지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감을 이야기한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전한다.

 

그 고민들은 바로 삶의 밀도, 혹은 일상의 완결성에 관한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언제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직/간접적인 경험은 일상으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변화와 끝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갑작스레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일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현실적 고민들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집단적으로 경험한다면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공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내일 당장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 혹은 내가 삶을 공유하고 있는 누군가가 지금 당장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유한한 나의 일상의 삶이 내가 만족할 만큼 밀도 있는 삶인가, 그리고 언제고 갑자기 끝나도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이 밀도는 열심히 일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열심히 아무 것도 안하는, 말 그대로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감독은 그 삶의 밀도와 일상의 완결성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 일본인들의 변화된 인식을 화면에 그리고 있다.

 

또 하나, ‘만약에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내가 없어지면, 혹은 누군가가 사라지면, 그 사람은 혹은 나는, 서로를 기억해줄까라는 작은 의문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사라진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큰 소망이 되는 동시에, 내가 만약에 사라지도라도 꼭 기억해달라는 작은 소망이 되기도 한다. 바꿀 수는 없지만, 기억할 수는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억만을 남긴 채 끝나지는 않는다. 감독은 결국, ‘만약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현실을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통해 그 만약에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실현되는 것도 그 나름의 현실감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억하고, 또 고민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자는 말과 함께 그는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이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희망적인 일상만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감독의 청자는 2011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겪은 일본인들이겠지만, 3년후 세월호의 순간을 겪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한테는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9/10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