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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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9. 22:51 카테고리 없음


당신은 모르면 행복한 것들을 굳이 알아가면서 괴롭게 살아갈 용기가 있는가?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익명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진짜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가?’ 영화가 끝나고 문득 떠오르는 것은 관계와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와이 슌지가 왜 이렇게 현실적인 어법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현실적으로 보였던 많은 부분들이 실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현실적인 모순들을 판타지로 포장하는 그의 취미, 혹은 재능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살짝 안도감을 느꼈다.

 

동명이인의 이야기를 담은 러브레터, 근미래의 일본을 이야기하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도 결국에는 결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현실 세계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립반윙클의 신부역시 다르지 않다. SNS 중심의 관계 맺기, 익명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신뢰,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나타나는 작은 휴머니즘, 집착과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묘사까지 비현실적인 설정과 요소들이 차곡차곡 현실인 것처럼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 안에서 관객은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함께 있고 싶었던 사람과 순간들을 떠올리며 어느새 이와이 슌지표 감수성에 푹 빠지게 된다. 마지막 순간, 고요한 적막과 함께 창을 여는 여주인공의 표정에서 이 이야기가 꽤 해피엔딩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어느새 삶의 위안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흔해빠진 행복도, 혹은 긍정적인 자아 찾기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비현실적이면서 잔인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설원 속의 오겡끼데스까가 영화 러브레터의 전부가 아니라, 첫사랑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그녀와 꼭 닮은 여자와 결혼하고 갑자기 죽은 남자, 그리고 그 비련의 여주인공이 영화 러브레터의 또다른 이면인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익명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진짜 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나는 누군가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보다 더욱 깊숙한 곳에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당신은 모르면 행복한 것들을 굳이 알아가면서 괴롭게 살아갈 용기가 있는가?’, 라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과연 아무 이유도 없이 마냥 좋은 것인지, 혹은 누군가의 호의가 과연 어떠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지, 또한 내가 이유 없이 행복한 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감독은 우리에게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며, 나의 행복에 대해 의문을 가지라고 말한다.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비현실적이지만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만은 여전히 날카로운 이와이 슌지. 그가 여전해서 다행이다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립반윙클의 신부>(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2016) 8/10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0551


* 이 감상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