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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31. 07:45 카테고리 없음

<네티즌 리뷰> 고급 신파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윤종신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90년대'의 그를 경험하지 못한 많은 청자는 뮤지션(혹은 가수) 윤종신이라는 수식어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래 들어 예능과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맹활약하는 모습과 한 달에 한 번씩 싱글을 발매하는 모습 사이에서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박식하고 분석적인 프로듀서로서의 면모, 그리고 (비록 자신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작년 '본능적으로'에 이어 올해 '막걸리나'로 음원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던 세일즈 파워로 인해 그가 '촐싹대는' 가수 출신 예능인이 아니라, 실력 있는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살자'는 목표대로 작년부터 시작한 [月刊 尹鍾信] 프로젝트는 다행히도 올해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두 장의 종합 선물 세트를 청자에게 선사해주었다. 매달 싱글 발매, 적지 않은 뮤지션들과의 교류, 그리고 다양한 시도들로 [行步 2010 Yoon Jong Shin]은 2010년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좋은 음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그는 자신의 2010년의 행보가 예능을 넘어 음악에 있었음을 슬그머니 보여주었다. 90년대의 복고적인 감성과 새로운 시도들이 결합하기 시작했던 [行步 2010 Yoon Jong Shin]안에서 우아하게 '찌질대는' 남자의 노래, 그리고 찌질대지만 과하지 않게, 그렇게 윤종신표 멜로디는 여전히 절제의 규칙을 지킨 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었다. 

윤종신은 올해에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신선하지만 다소 산만한 부분이 있었던 작년의 결과물보다 비록 그 펄떡이는 느낌(마치 개명(改名)하고 새로 첫 음반을 발매한 듯한 신선함)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빈틈없이 월별로 발표된 곡들의 완성도 높은 송라이팅, 흠잡을 곳 없는 편곡과 연주, 그리고 화려한 출연진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으며 여전히 큰 힘을 실어주는 조정치와 하림의 서포팅으로 다양해진 장르의 다양한 감정의 사랑과 이별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캐스팅에 성공한 각본상 수상 영화처럼 모든 것이 최선의 자리에 있어 한편의 블록버스터 러브 로맨스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윤종신표'라는 도장이 깊게 찍혀 있다. 모두가 멋진 이별과 쿨한 사랑을 노래할 때 후회하며 매달리는 이별과 설레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랑을 노래한다. 유려한 멜로디와 자연스러운 가사는, 스스로 'TV KIDS'를 자처하는 그의 말처럼 시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스럽게 가공되지 않은 일상의 감정을 들려준다. '90년대 대표 싱어송라이터'라는 오랜 수식어에 걸맞는 '우아하게 구차한' 그만의 느낌을 여전히 잘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이 분명히 그가 20세기에 발매했던 노래들과는 다르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의 고급스러운 신파는 21세기라는 시대에 걸맞게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새로운 옷을 입는 중인 듯하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며 장르적인 구분을 초월하여 40대의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하지만 신선한 음악을 들려준다. 'Love Scanner'와 같은 곡처럼 그의 오랜 음악적 파트너인 정석원과 젊고 의욕 넘치는 래퍼 스윙스를 하나의 작업물 안에 담으면서 면면히 이어온 그의 복고적 감성에 모던한 느낌을 가미한 것은 어쩌면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고급 신파'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뒤처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말이다. 

'윤종신표' 노래들은 언제 들어도 철 지난 유행가의 가사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이 약간 철 지난 느낌은 90년대의 그의 노래를 지금 들어도, 혹은 이 앨범을 20년 후에 듣더라도 마치 재작년에 이 세상에 등장한 것처럼 신선할 것이다. 결국, 몇 년이 지나더라도 변한 것은 표현의 방식뿐, 그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감정과 유려한 멜로디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건 변화, 혹은 변절(?)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차라리 성장, 혹은 발전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적응하며 그의 '고급 신파'는 21세기에도 안녕하신 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화려한 출연진 덕분에 '싱어' 윤종신의 독특한 보이스를 조금 더 감상할 수 없었다는 것뿐. 그것만 빼면 듣고 있는 우리도 그의 음악 안에서는 여전히 안녕한 듯하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