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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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30. 23:15 카테고리 없음


오아시스(Oasis)는 90년대 영국 밴드 음악씬의 아이콘이다. 블러가 아무리 명민하고, 플라시보가 아무리 뇌쇄적이고, 심지어 라디오 헤드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고 할 지라도, <90년대 브릿팝=오아시스>의 공식은 리스너에게 매우 암묵적으로,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각인이다. 마치 가장 좋아하는 팝송은? 이라는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비틀즈의 <Let it be>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90년대를 살아온 밴드 키즈들에게 오아시스는 특별하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 정도가 더 하다. 심지어 전성기를 훨씬 지나고, 이제는 형제간의 초딩스러운 다툼으로 해제까지한 그들이지만, 양국에서는 여전히 갤러거 형제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다. (물론 영미권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다른 뮤지션에 비해 훨씬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아시스의 거의 대부분의 곡들 쓴 문제아 형제의 형인 노엘 갤러거에 대한 숭배는 매우 무조건적이다. 얼마전 모 사이트에서 했던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부분에서 많은 전설들을 제치고 2위를 기록, 여전한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엘 갤러거. 인기 없던 동생 리암의 밴드에 가세해 밴드를 세계적으로 만들었다. 오아시스라는 밴드에서 리암의 목소리가 30%라면 나머지 70%는 노엘의 송라이팅이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격이나 인간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노엘은 충분히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가졌던 거의 모든 것을 가진 몇 안되는 송라이터다.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뽑아 낼 줄 아는 송라이터. 천재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뮤지션으로서 천재적이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대중성이다. 누구라도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 노엘은 그런 의미에서 천재다. 사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동생 리암은 '노래 조금 하는' 미운 오리 새끼였을지도 모른다. 형에게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동생.

하지만, 이제 더이상 천재는 없다. 리암과 나머지 멤버들(앤디 벨, 겜 아처, 크리스 셰록)은 이제 오아시스가 아니라, 'Beady Eye' 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자신감에 넘쳤다. '우린 오아시스를 뛰어 넘을 것이다"라고 장담하던 리암은 첫 싱글 <Bring The Light>을 무료로 공개한다.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오아시스보다 더 과거의 록큰롤을 들고 나올 줄 몰랐다는 것이 지배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하나더, 오아시스를 뛰어 넘긴 힘들겠다는 것이 청자의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썩 괜찮은 노래였지만, 사람들에겐 <오아이스 - 노엘 = 비디 아이>라는 공식을 더 확신시켜주었다. 더이상 천재는 없다. 그리고 반전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데뷔 앨범의 제목으로 정한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라는 말처럼, 비디 아이는 오아시스와 같은 차원의 그룹이 아니다. 누가 더 고차원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선상에서 우열을 판별하기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잘난 누군가가 혼자 만든 노래보다, 나랑 비슷한 네명이 만든 노래가 더 듣기 좋다"고. 청자가 바라는 것은 천재 자체가 아니다. 청자는 천재가 만든 유려한 노래를 바란다. 하지만, 그 유려한 노래가 굳이 천재의 머리속에서 나오지 않아도 청자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래 자체이지, 천재의 유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The Roller>가 발매되었다. 프론트맨 리암의 작곡도 아닌, 기타리스트  겜 아처의 곡이다. 하지만 노래는 적절한 빠르기와 꽤 괜찮은 중독성, 그리고 안정적인 역할 분배를 보여주고 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곡이 나온것이다. 연주에선 흥겨움이 느껴지고, 결정적으로 리암의 목소리에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진다. 자신에 대한 확신, 그리고 팀메이트들에 대한 확신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리암아, 넌 혼자 안돼, 얼른 노엘이랑 다시 합쳐." 혹은 "여전히 오아시스만 못하네" 등등. 그들에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과연 당신은 지금까지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었던 것인가, 노엘이라는 천재를 들었던 것인가. 그리고 지금 당신이 듣는 것은, 미운 오리새끼 같은 외톨이 리암의 노래인가, 아니면  'Beady Eye'라는 온전한 밴드의 음악인가. 

결국, 좋은 노래는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Beady Eye'의 <The Roller>는 첫단추로써 매우 만족스럽다. 이상하게 후렴구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울컥한다. 천재를 잃은 (혹은 버린) 남은 이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그래, 없어도 잘하잖아', 라면서 격려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칭찬까지 곁들여서 말이지.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