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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0. 13:23 카테고리 없음

댄서블(Danceable)한 진심, The Koxx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2011년 기준 평균 나이 22.5세. 이 젊은 그룹은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표현이 꽤나 어울린다. 2009년말 신인밴드의 등용문인 EBS 헬로루키의 통과와 레이블 계약, 그리고 6개월 만에 EP, 이어서 1년 만에 첫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발매. 그 사이 있었던 국내외의 호평과 수많은 러브콜까지 더하면, 2년사이 밴드 The Koxx는 엄청나게 뛰어 올랐다. 얼마나 많이 뛰어 올랐는지, 그 기간 동안 밴드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댄스유발자'라는 별명대로 이들이 보여주는 댄서블(Danceable)한 진심, 그리고 그 진심을 전해주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정도일까.

EP 앨범부터 그들의 음반은, 그리고 그들의 공연은 흥분과 열기의 아이콘이었다. 리듬 파트의 흥겨운 진행과 멜로디 파트의 재미난 구성은 보컬의 독특한 음색과 어우러져 듣는 이의 귀를 강하게 자극함은 물론, 어깨들 자동반사적으로 들썩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력질주의 머신처럼 그렇게 청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연주하고, 관객은 춤을 준다. 그것이 The Koxx의 필승 공식(?)이라면 공식이었다. 

1년 만에 발매한 첫 정규앨범 [Access Ok]에서 밴드는 조금 달라졌다. 셀프 프로듀싱을 통해 그들이 도달한 것은 EP를 넘어서 조금 더 댄서블하게 청중을 자극하는 것,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멜로디와 비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먹기 좋은 떡이 맛난 것처럼, 누구나 듣기 좋은 음악이 정말 좋은 음악이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그들은 이 앨범이 전작보다 "말랑말랑"해졌다고 말했다. 충분히 동의 가능한 부분이다. 멜로디 라인은 보다 청자에게 친근하게 말랑말랑해졌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게 녹록하게 말랑하진 않은 것도 사실이다. 

리듬 파트의 직조(織造)는 더욱 세밀해졌다. 드럼 녹음이 아닌 미디로 시퀀싱한 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레트로한 비트들은 그것이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들릴 수 있도록 충분히 고려되었다. 날줄과 씨줄이 겹겹이 교차하는 것처럼 틈새를 찾을 수 없게 몰아친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촘촘한 리듬 파트 사이로 작은 구멍을 찾아 왕복 운동중인 기타와 댄서블이라는 도장을 깊게 찍는 신디사이저의 뽕뽕거림은 이들이 본래 청자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핵심으로 모두를 확실하게 이끌어 간다. 물론 그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누구나 어깨를 들썩일만한 흥겨움,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세련되고 보편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가요적인 관점에서 이들이 팔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젠 밴드 음악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와 곡 진행, 그리고 보다 대중적인 보컬의 음색, 친근한 일상어의 노랫말 중 어느 것도 해당사항은 없다. 하지만 음악적인 매력이라면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만한 무언가를 반드시 가지고 있다. 룰렛 위에서 세련된 포즈로 원주(圓周)하는 공과 같이 멋지게 반복되는 이들의 루프 속에는, 사실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무언가가 있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잠시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순간적으로 고조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충만해지는 들썩이는 마음, 그리고 어깨를 느낄 수 있다. 명불허전의 속도감에 적절한 완급조절로 유발되는 그 고조되는 감정을 놓고 본다면 The Koxx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멤버들의 말처럼 말랑말랑한 멜로디, 앨범 곳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잔재미들까지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많은 이들에게 어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론 데뷔 때부터 이들과 함께 해오던 몇몇 유명 밴드의 카피캣(Copycat)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이 이번 앨범에서 완벽하게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들은 그들과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분류될 수 있는 음악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밴드는 트렌드에 충실하면서도 전작보다 더 자신들만의 질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수많은 멜로디와 비트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이 시점에서 뮤지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운드의 질감이다. 앞서 말할 것처럼 이들이 앨범에서 보여준 리듬 파트의 레트로한 매력과 멜로디 파트의 거칠면서도 세련된 질감은 충분히 The Koxx만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속도, 그리고 완급조절이 그 질감을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이들이 세간(世間)의 기대(?)와 같이 글로벌 밴드로 크게 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그들이 전해주는 이 댄서블한 진심이 '댄스유발자'라는 수식어답게 청중을 춤추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들이 말했던 것처럼, 멤버들의 개성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음악을 즐기는 것. 그 마음이 계속된다면 이들은 언제고 누구라도 춤을 추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평균연령 22.5세, 이토록 재미난 앨범이 이들의 첫 앨범이다. 그래서 많이 기대가 되기는 한다.

posted by rubber.soul
2011. 6. 8. 19:09 카테고리 없음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년의 사랑 노래 / スピッツ(spitz, 스피츠)

1. 세월이 흘러도 영원한 우리의 사춘기 소년(들)

“클럽에서 헌팅해서 같이 나갔는데”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그게 가능 한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저 애를 공략할 수 있을까” 라며 1년 계획을 달력에 표시하는 난 정말 뭘까?(보컬 마사무네)

1991년, 첫 앨범 <ヒバリのこころ(종달새의 마음)>으로 데뷔한 이래, 변함없는 감수성으로 우리곁을 지키고 있는 スピッツ(spitz, 스피츠). 많은 밴드들이 생겨나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고 사라지는 사이, 한번의 멤버 교체도 없이 20년을 이어온 이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변치 않는 소년의 감성”이다. 언제 들어도 풋풋할 수 있는 가사과 목소리는 밴드를 20년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발전 없는 감상주의라는 말은 아니다. 밴드는 충분히 진화해왔으며, 여러가지 스펙트럼의 음악을 보여주었고, 여전히 진행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춘기 소년의 사랑과 연애, 밴드가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시작은 엇갈렸으나, 그 과정은 흥미롭고 결과는 진행중이다.

20살무렵엔 블루하츠(ブルーハーツ)를 너무 동경한 나머지, 펑크록커처럼 하고 다녔지.
머리도 염색했는데 전체를 노랗게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
근데 그렇게 하면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왠지 무시 당할거 같아서 안했다는..
(보컬 마사무네)

대학 초년생이던 草野マサムネ(쿠사노 마사무네, 보컬/기타)와 田村明浩(타무라 아키히로, 베이스/밴드 리더)를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들인 三輪テツヤ(미와 테츠야, 리드기타)와 崎山龍男(사키야마 타츠오, 드럼)가 가세하여 67년생 동갑내기 팀을 이룬 밴드는 초기엔 마사무네의 말처럼 펑크록을 중심으로한 음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들에게 그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밴드는 마사무네를 중심으로 지금의 스피츠를 연상시키는 곡들을 차곡차곡 완성해 나간다.

하지만, 94년 5번째 앨범인 <空の飛び方(하늘을 나는 법)>과 95년 6번째 앨범인 <ハチミツ(벌꿀)> 발매 전까지 밴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두 앨범 발매, 그리고 수록곡인 <ロビンソン(로빈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가사에 담겨 있는 풋풋한 연애의 감정, 그리고 보컬 마사무네의 목소리와 밴드의 연주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의 감성은 소년의 감성이다. 몇살이 되어도 한결 같을 것만 같은 순수하고 풋풋한 느낌. 하지만 이 소년은 생각이 많다. 때로는 생각에 잠기고, 때로는 그 생각에 밤을 지새고 그리고 어떤때는 많은 생각을 훌쩍 던져버리기도 한다. 싱글 <ロビンソン(로빈슨)>을 즈음하여 밴드가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그 소년이었으며, 그 느낌은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 <インディゴ地平線(인디고 지평선)>과 <フェイクファー(페이크 퍼)> 앨범을 거치면서 그들이 얻은 것은 경쾌한 유머 감각이었다. 그래서 세상을 관조하던 소년은 세상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여유와 웃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9번째 앨범 <ハヤブサ(하야부사)>를 거치면서 소년은 달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감수성에 웃음과 여유를 더한 소년은 드디어 질주(疾走)한다. 그 안에는 소년의 모든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질주는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질주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돌아온 이들의 모습(<スーベニア(스베니아)>)은 이제 그 소년의 감성이 마스터피스가 되었다는 만족감마저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감성은 담은 마스터피스에 더욱 다가가기 위해 밴드는 여전히 질주하는 중인 것이다.


3. 차이고 또 차여도 봄은 오지, 그것이 바로 ‘청춘의 연애’

30이 넘으면 첫사랑의 감정이 남아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스무살때는 30이면 완전 아저씨에 잔소리꾼이 될줄 알았는데
꽤 괜찮은 상태로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이 남아 있구나(보컬 마사무네)

<チェリー(체리)>라는 노래는 96년 발매한 밴드의 13번째 싱글이며, 로빈슨에 버금가는 히트를 기록한다. 이미 PUFFY, つじあやの(츠지 아야노) 등 다방면의 뮤지션들에게 열차례가 넘게 리메이크되었으며 일본에서 교과서(합창 과목)에 실렸다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노래에 대해 노래를 만든 마사무네는 “벚꽃은 봄에 피는 꽃이라서,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로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듯한 이미지”를 빌려와서 노래의 제목을 짓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엔 노래의 제목이 “비파”(비파나무)였던 것을 생각하면 체리라는 제목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작명(作名)인지 모르겠다.

좋은 곡은 TV 드라마나 CF에 쓰이는 경우가 많은 일본이지만, 이 <체리>라는 곡은 그런 일종의 홍보(?) 효과도 없이 큰 히트를 기록했다. 발매되고 나서 4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일본의 음반 차트인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지만, 밀리언 셀러(161만장)를 기록하는 등 그해 싱글 판매 4위를 기록했다. 95년 투어 중간에 만들어진 곡으로 마사무네는 "투어를 하면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은 곡"이라며 코멘트하기도 하였는데, 과연 그 이미지대로 가사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먼길을 걸어 여행을 떠나는 느낌도 나는걸 보면, 빈말은 아닌것 같다. 한편, <체리>에 같이 수록된 곡인 <バニーガール(바니걸)>에 대해 보컬인 마사무네가 "변태성(變態性)을 소중히 여길 것, 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긴해도, 그래서 이번에도 체리 한곡뿐이라면 뭔가 부족해보여서 (싱글에) <バニーガール(바니걸)>이라는 곡을 함께 넣었다구"라고 재미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경쾌한 리듬 속에 심플하게 그려지는 곡조만 보면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생각될 정도로 밝은 이 노래는 사실, 떠나간 연인을 그리면서 그(혹은 그녀)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물론 희망적인 미래를 그린다는 점에서는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이 어울리지만, 가사는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스피츠의 많은 노래가 그렇듯이, 이들이 노래하는 소년의 감성, 혹은 연애는 매우 복잡하다. 그들이 표현하는 그 소년이 순진하고 구김없는 소년이 아니라, 생각이 많은 사춘기의 소년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로 기운이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愛してる"の響きだけで 強くなれる気がしたよ)”라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있는 이 노래. 그럼 이제, 그 소년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한번 들어보자.


* 이하의 해석에는 의미전달의 명확화를 위한 의역이 많습니다. 그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スピッツ(spitz, 스피츠) / チェリー(체리)(1996)
작사/작곡 : 草野正宗(쿠사노 마사무네), 편곡 : 笹路正徳&スピッツ

君を忘れない 曲がりくねった道を行く
키미오 와스레나이 마가리쿠넷따 미치오 유크
너를 잊지 못해, 구불구불한 그 길을 걸어간다


二度と戻れない くすぐり合って転げた日

니도또 모도레나이 쿠스구리앗떼 코로게타히
두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너와 함께 웃으며 장난치던 그때

きっと 想像した以上に 騒がしい未来が僕を待ってる

킷토 소오조오시타이죠오니 사와가시이 미라이가 보크오 맛떼루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일이 있을 것 같아


"愛してる"の響きだけで 強くなれる気がしたよ

"아이시테루"노 히비키다케데 츠요크 나레루 키가 시타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로 기운이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きしめて

사사야카나 요로코비오 츠브레루호도 다키시메테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뻐했던 그 마음을 부서질만큼 꼭 안아줘


こぼれそうな思い 汚れた手で書き上げた

코보레소오나 오모이 요고레타 테데 카키아게타
언제나 생각나는 너와의 추억, 몇번이고 고쳐 쓴

あの手紙はすぐにでも捨てて欲しいと言ったのに

아노테가미와 스그니데모 스테테호시이도잇따노니
그 편지는 얼른 버려줬으면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이 아니야)

少しだけ眠い 冷たい水でこじあけて

스코시다케 네무이 츠메타이 미즈데 코지아케테
조금 지쳐 잠이 와도,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今 せかされるように 飛ばされるように 通り過ぎてく

이마 세카사레르요오니 토바사레르요오니 토오리스기테쿠
이제 쫓기는 듯이, 마치 쫓겨난 듯이 그 추억을 지나가버리지


"愛してる"の響きだけで 強くなれる気がしたよ

"아이시테루"노 히비키다케데 츠요크 나레루 키가 시타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로 기운이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で 君とめぐり会いたい

이츠카마타 코노바쇼데 키미니 메그리아이타이
언젠가는 다시 이곳에서 너와 만나고 싶어

どんなに歩いても たどりつけない 心の雪でぬれた頬

돈나니 아루이테모 타도리츠케나이 코코로노 유키데 느레타호호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어서 마음속 그 눈(雪)에 젖은 두 볼

悪魔のふりして 切り裂いた歌を 春の風に舞う花びらに変えて

아쿠마노후리시테 키리사이타우타오 하루노 카제니 마우 하나비라니 카에테
악마처럼 갈기갈기 찢어버린 이 노래가 (그래도) 봄 바람에 날리는 꽃잎에 되었으면 해

君を忘れない 曲がりくねった道を行く

키미오 와스레나이 마가리크넷따 미치오 유크
너를 잊지 못해, 구불구불한 그 길을 걸어간다

きっと 想像した以上に 騒がしい未来が僕を待ってる

킷또 소오조오시타이죠오니 사와가이시 미라이가 보크오 맛떼루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일이 있을 것 같아


"愛してる"の響きだけで 強くなれる気がしたよ

"아이시테루"노 히비키다케데 츠요크 나레루 키가 시타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로 기운이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ささやかな喜びを つぶれるほど抱きしめて

사사야카나 요로코비오 츠브레르호도 다키시메테
별 것 아닌 일에도 기뻐했던 그 마음을 부서질만큼 꼭 안아줘

ズルしても真面目にも生きてゆける気がしたよ

즈루시테모 마지메니모 이키테유케르 키가 시타요
비겁하게든, 성실하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기분이 들어

いつかまた この場所で 君とめぐり会いたい

이츠카마타 코노바쇼데 키미토 메그리아이타이
언젠가 다시 이곳에서 널 만나게 된다면 말야.


아련한 추억과도 같은 사춘기의 사랑이 느껴지는가? 아직 그것이 느껴진다면 당신의 감성은 죽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때론 당시의 우리들을 추억하며 옅은 웃음을 짓는 것도 꽤 괜찮은것 같다. 스피츠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rubber.soul
2011. 5. 7. 02:27 카테고리 없음


나의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럽다고 느끼게 해주는 진심.

작년 첫 EP인 <옥탑라됴>를 통해서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인상적인 첫 감상의 어느 아침. 나는 그 음악속에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다행이라거나 축복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아침 이들의 노래를 들었을때 오랜만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감정을 조금 더 깊고,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나에게 이 감성을 곱씹어 볼수 있을 만큼의 지나간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옥상달빛의 음악이 그런 나의 추억들을 새삼 기억나게 해주었다는 것. 게다가 실감나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의 나(혹은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따사로운 볕과 가끔 그 햇빛을 가려주는 작은 그늘만 있으면 행복했다. 시덥지 않은 농담에 웃어줄 누군가가 있으면 마냥 좋았고, 싸구려 커피 한잔에도 즐거워졌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고, 난 그런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이다. 물론 지금의 나와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혹은 우리)에겐 계산보다는 기분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많았다.

청아한 목소리와 보사노바부터 왈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송라이팅, 잔잔하지만 완급 조절, 그리고 해학과 아련함까지 두루두루 전해주는 옥상달빛은 분명 좋은 노래를 만드는 뛰어난 송라이팅 그룹이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도 흠잡을 곳 없는 이 두 여자의 진짜 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아이돌 음악만큼 쏟아져 나오는 어쿠스틱/째즈 성향의 수많은 음악들, 특히 '여신'을 자/타칭하며 숱하게 등장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서 왠지 모를 '싸구려' 감성을 느꼈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좋은 음악들도 엄청나게 나왔지만, 아이돌의 홍수처럼, 여신들의 음악도 홍수였던 것은 틀림없다) 옥상달빛이 싸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장면에서도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진지하고, 또한 진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웃음의 순간에서도 이들은 성실하다. 성실하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전달된 진심이 청자에게 다가가서는 추억을 울린다. 마치 '너의 추억은 매우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듯이 나의 지난날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많은 밴드들이 따스하고 행복한 순간을 노래한다. 따사로운 햇볕아래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저 넘어 창밖을 향해 달콤한 가사를 노래한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화자의 진심이며, 청자는 어디까지 감정을 이입하고 믿음을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 그리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의 추억으로 돌진하여 잊혀졌던 순간을 살려내는 진심이 그리웠다. 그리고 나의 추억이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달콤한 속삭임이 듣고 싶었다. 달지만 거짓이 아닌 그말이 말이다. 

그래서 옥상달빛의 음악은 좋다. 나에게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러운 것이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 진심어린 배려가 마음에 든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또 예쁘고 즐거운 그들의 음악속에 그런 진심이 있어서 다행이다. 기교나 스타일따위의 것을 넘어선 그것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진 노래들. 그게 옥상달빛의 노래다. 아코디언과 실로폰 소리가 참 정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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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2010년 어느날,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난 이런 기분이었다.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이어폰 속에 흘러나오는 감성은 90년대 홍대앞의 수수함이었다. 너무 포괄적인 감상평이 될수도 있으니,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한가한 토요일 오후 브런치를 빙자해서 학교앞 친구의 옥탑방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빵집에서 산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고는 햇빛 아래 그늘을 찾아서 담배를 한대 피며, 시덥지 않은 진담들을 나누던 그때가 떠오른다. 만일 나에게 옥탑방에 사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그리고 한가로운 토요일과 따사로운 햇살이 없었다면, 그리고 시덥지 않은 진담에 귀를 기울여줄 누군가(들)이 없었다면 옥상달빛의 음악은 연휴가 끝난 화요일 출근길, 나의 감성을 이리도 자극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축복이요, 다행이라는 느낌. (2010.3.2)
posted by rubber.soul
2011. 4. 7. 17:43 카테고리 없음

<네티즌 리뷰> 신선한 등장을 통해 한정된 역할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발견하다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한국에는 양질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 '좋은' 싱어송라이터가 많이 있다. 또한,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그룹은 그 안에서 적지 않은 부분은 담당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훌륭한 활동을 보여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규정하는 수식어 중엔 유독 '전형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고 때로는 고즈넉하게, 때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 일상 속의 나와 너, 그리고 그 사이 소통의 문제를 음악으로 풀어놓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음성으로 대표되며 세간의 눈에 '전형적'이라고 비춰지는 그 많은 여성 뮤지션들은, 생각해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좋은 음악'을 들려주며 우리 곁에 항상 있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성향은 세분화, 혹은 진화를 거듭하며 홍대 앞의 여신이 나타나기도 하고, 국민 여동생급의 뮤지션들도 생겨나고 혹은 관능적인 언니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형적'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그들을 규정하는 수식어로 기능한다.

검정치마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임유진'의 솔로 앨범이 등장했다. '야광토끼'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밴드에서 송라이팅을 담당하지 않은 멤버의 솔로 앨범은 대체로 별로'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혹은 무려) 9곡이 담긴 야광토끼의 첫 앨범은 분명히 '좋다'. 지금까지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을 담고 있기에 더욱 좋다.

야광토끼는 기본적으로 밴드적인 화법에 충실하다.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한 악기 간의 역할 배분, 그 속에서 하나의 악기로써 매력을 발산하는 보컬, 앨범 전체를 흐르는 일관된 감성의 전달, 그리고 탄탄한 곡 전개까지, 분명히 이 앨범은 밴드 음악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앨범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도입되고 있는 80~90년대의 비트들과 그것을 표현해주는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은 세련되고, 적당하다. 그리고 그 적당함은 지나간 추억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히 아련한 비트감을 주면서도, 이 음반이 21세기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또한, 무표정하기만 할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의외로 상큼하고,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기자기하다. 야무지게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 있다. 밴드적 화법에 세련된 복고미(復古美), 그리고 상큼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우리는 야광 토끼의 음악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성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필요하게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볍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부족하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과하지 않다.

그간 레트로 열풍에 반응하여 쏟아져 나온 메이져와 인디 음악씬의 수많은 시도들이 보여주었던 '그럴려고 그러는' 오류를 이 음반은 범하고 있지 않다. 단지 '복고'적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그 트렌드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장된 복고풍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물론 첫 트랙을 듣는 순간 '아!' 하고 반응할 정도로 이 앨범은 '대놓고' 레트로하다. 그렇다고 해도 '21세기 한국(혹은 앨범 제목처럼 서울)'의 음악으로써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야무지게 신선하다.

야광토끼는 이 앨범 [Seoulight]를 통해 21세기에 들어도 이질감이 없는 신선한 복고미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등장이 의미 있는 이유는, 좋은 앨범을 들려주었다는 것 이외에도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가지는 비교적 한정된 역할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어 그 빈자리에 정확히 안착했다는 점이다.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더욱 다양한 종류의 시도들이 생겨나고, 또 얼마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새로운 시도는 분명히 신선하다. 그리고 훌륭하게 새롭다. 그래서 야광토끼의 앨범은 의미가 있다. 명당자리에 성공적으로 포지셔닝한 그녀의 시도가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다양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말이니까. 비단 여성 싱어송라이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음악씬에서 여러 뮤지션들의 역할과 위치가 자유롭고 다양하다고 만은 할 수 없기에 그녀가 열어준 가능성은, 그래서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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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15. 22:01 카테고리 없음


Good Job! brilliant SWINGIN' Bros

"SOFFet"의 음악은 무엇보다도 "재미"지다. 그들은 언제나 대중적인 재미를 주고, 흥겨운 재미를 주고, 감동적인 재미를 주며, 때로는 귀엽게, 그리고 가끔은 멋있게 재미지다. 절대로 폼잡고 랩을 지껄이지 않는다. 그리고 눈가에 힘주고 잘났다고 외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친근하다. 그리고 대중적이며, 그것은 바로 메이져 지향적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재치있는 가사들, 감각적인 멜로디와 발군의 리듬감은 웰메이드 메이저 힙합(혹은 그냥 팝)이 무엇인지 충분히 보여준다. 그래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웰메이드 메이저 뮤직만이 그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원래 스윙잉 브라더스(SWINGIN' Bros)니까.

'Swinging'의 사전적 정의는 '유쾌한 활발한 경쾌한' 등등. 어느모로 보나 이들의 음악과 일맥 상통한다. 하지만 스윙잉 브라더스의 의미는 단순히 낙천가의 경쾌한 음악만은 아니다. 그리고 <春風>나 <へその緒>, 혹은 <恋唄>와 같이 일본 메이저 힙합씬에서 지금도 가장 각광받는 (게다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발라드와 힙합의 절묘한 믹스쳐들만이 이들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진짜 스윙 째즈(Swing Jazz)의 리듬에 랩을 싣는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진짜 SWINGIN' Bros인 이유이다.

이번 앨범은 그들이 지금까지 다른 아티스트와 협연한 노래들이 종합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PE'Z나 スキマスイッチ, HOME MADE 家族, mihimaru GT, MONGOL800같은 뮤지션들은 물론, Sunaga t experience나 Tokyo Junkastic Band, Spinna B-ILL과 같은 째즈/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SOFFet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모습들 중에서도 가장 질높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일반 베스트 앨범보다 오히려 더 가치있는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앨범 중반부에서 보여주는 어반 힙합이나 밴드 팝뮤직같은 모습에서부터 종반부의 발라드 넘버까지 그들의 음악에서 상위 1%만 뽑아 놓은 듯한 즐거운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이 앨범을 통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첫트랙 <Beautiful Smile with Tokyo Junkastic Band>부터 7번 트랙인 <音遊技〜参段〜 feat. スキマスイッチ>까지 흐르는 그들의 스윙잉 브라더스로서의 본능. 스윙, 라틴, 스카, 펑크(funk) 등 다양한 장르의 스윙잉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아티스트로서의 SOFFet을 이 앨범 한장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흥미로운일이다. 찰진 사운드, 넘쳐나듯 흐르는 그루브, 그위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래핑까지. 많은 히트곡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곱개의 트랙에서, 우리는 그들만이 할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누구나 할수 있는 음악을 단지 세련되고 대중적으로 뽑아내는 것만이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의 최대치는 경쾌한 스윙잉에 실려 있을 때 빛을 발한다는 사실말이다. 

나는 감히 일본 랩 뮤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룹을 꼽으라면 드래곤 애쉬(Dragon Ash)와 SOFFet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스윙잉 브라더스로서의 이들은 멋지다. 아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재미있다. 재미지다. 누구보다도 재미진 스윙잉을 보여주는 이들이기에 난 이번에도 엄지 손가락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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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곡은 역시 MONGOL800와 함께 부른 <ひとりじゃない>. 스윙잉이고 힙합이고, 레게고 밴드 뮤직이고를 떠나서 정말로 200%의 시너지를 주는 노래. 그냥 흐믓하게 만든다. 아쉬운점은 dorlis와 함께 부른 <ワクワク♥ぬけがけ大作戦>가 안들어 있다는 것. 이곡도 정말 멋진데.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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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8. 20:41 카테고리 없음


더욱 많은 이들에게 진심을 전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등은 생략하겠다. 어차피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포맷과 출연진, 그리고 결과에 대해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시청률만을 의식한 서바이벌 시스템? 누구도 감히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전설들의 서열화? 고작 예능 프로그램따위에서 죽을 듯이 열창하는 가수들? 전부 아니다. 노래 중간에 삽입되었던 가수들의 나레이션과 개그맨들의 지나친 오바로 인한 곡에 대한 '몰입 방해'. 이것이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분이 상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적어도 공중파의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중에서 꽤 괜찮은 방송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잡음이 있었다. 주말 예능의 한복판에 올려진 7명의 뮤지션들이 살얼음판과도 같은 그곳에서 그간 쌓아온 예술인으로서의 명예와 기타 사회적인 무언가를 잃지는 않을까하는 우려, 그리고 그들을 그 경쟁의 한복판에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인 갖가지 병폐들까지 인용되면서, 마치 프로그램이 ‘그들을 강제적으로 그곳에 올린 듯’ 한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맞는 말이다. 이미 케이블TV와 공중파를 거쳐 검증된 리얼 서바이벌 형식은 2011년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는 포맷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MBC와 일밤 역시 적극적으로 그 포맷을 차용하였고, ‘과다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소위 ‘병맛’ 프로그램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비난은 ‘강제로 천박한 예능 무대에 올려진 7명의 위대한 뮤지션들’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혹은 죽을 힘을 다해 7등을 면하기 위해 '노래로써 예능을 하는' 그들이라는 말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7명의 뮤지션들은 자의로 그 무대에 섰으며,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에 대한 인지도의 향상일수도 있고, 소외된 장르에 대한 대중적 어필일수도 있으며, 과거로 잊혀진 자신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일수도 있다. 누구하나 그 무대에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긴장은 했지만) 그 무대를 즐겼다. 긴장감이 흐르는 무대는 나쁜 것인가? 아니면 감히 예능 프로그램 따위가 위대한 뮤지션들에게 긴장감을 요구하는 것이 되도 않는 일들인가? ‘음악은 무대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말만으로 그들의 긴장어린 열창을 ‘주말 예능에서 살아남으려는 가련한 몸부림’으로 만들순 없다. 그들은 분명 긴장하며 무대를 즐겼다.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 꼭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악영향이 더 클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의 탈락은 분명히 그 가치가 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중의 한표에 의해 탈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감히 어떤 가수나 평론가가 이들을 탈락시킨다는 말인가?) 방송이후 며칠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상에서는 프로그램의 가혹성을 이야기하고, 가수들이 떨어지는 참혹한(?) 사태에 격분하며 자본주의 공중파 방송의 잔인함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다.) 음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적지 않게 이런 저항감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순위 매기기, 그리고 탈락에 대한 반발. 하지만, 그들이 심하게 반발하는 서열 결정이나 탈락은 사실, 음반 판매와 무엇이 다른가? 누군가 인기를 얻고, 누군가는 음반이 잘 팔리고, 그리고 누군가는 인생에서 탈락하는 모든 행위의 기본은 대중의 관심이다. 그리고 대중의 힘이다. 그런데도 짜여진 판이라고 언제까지 그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관심의 시작은 노출이다. 아이돌 음악이 득세하는 것은 그만큼 노출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예능이든, 음악 프로든 아이돌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들을 기회가 없으면, 사실 대중적으로 “없는 음악”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가지고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 대중의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많은 뮤지션들이 앞으로도 계속 주말 황금 시간대의 예능에 나와 주기를 바란다. 많이들 말한다. “관객이 한명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맞는 말이다. 진심으로 그 노래를 즐겨준다면 그걸로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를 진심으로 듣는 사람이 한명이 아니라, 백명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큰 진심이 그 사이에서 생겨날지도 모른다. 서바이벌이라는 짜여진 판속에서 고분분투할 그들이 대단하다. 그 판을 혹시나 뒤집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살짝 하게 만든다. 한명이 아니라 백명, 아니 천명의 진심이 모일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한명의 진심은 연애만으로도 충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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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런 글은 쓴 이유는, 그냥 요 며칠 올라오는 수많은 트위팅을 보다가 문득 나도 뭔가 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들의 진심이 조금은 왜곡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비보다가 글을 남기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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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5. 16:35 카테고리 없음

드디어 발매되었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지난 2월 21일, 본국 영국에서는 2월 28일, 미국/캐나다에는 3월 1일. 한국에도 며칠전인 3월 3일 정식으로 음원이 발매되었다. '2011년 필청해야될 앨범 1위' 등의 꽤나 진부한 수식어를 달고, Beady Eye의 데뷔 앨범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본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앨범을 구대하려다가 높은 가격+아이튠즈 LP의 부재로 잠시 기다리다가, 미국에서 15곡에 LP까지 포함된 버젼이 무려 7.9 달러에 나오자마자 구입, 도큐먼트 필름까지 포함되어서 개인적으론 꽤나 만족스럽다. 자, 그럼 이제 앨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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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기어를 넣고, 전속력을 위한 가속도의 시작

싱글 <The Roller>에서 이미 느낀 것이지만, 이들은 분명 '노엘'의 Oasis와는 다르다. 오아시스의 음악이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켜 클라이막스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웅장하고 감동적인, (다른말로는 다소 과장된 감정전달의) 장면의 연출에 그 '특기'를 두고 있다면, 비디 아이는 좀 다르다. 물론 어쩔수 없는 동일 태생의 영향권(비틀즈라던가, 스톤즈 같은)에 놓여 있어서 완전히 다른 음악을 할 수는 없지만, 유려한 멜로디와 기타 노이즈+현악 편곡으로 멜로디를 극대화하는 오아시스와는 달리, 보다 심플하고, 보다 찰진 연주, 그리고 (적어도 오아시스보다는) 충분히 다변화된 스타일, 마지막으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적인 목소리의 리암의 태도는 비디 아이를 오아시스와 다른 밴드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이 앨범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두가지의 특징은, 바로 '송라이팅'과 '목소리'이다. 그동안 노엘이라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멜로디 메이커에 가려져 있던 오아시스 멤버들의 송라이팅 실력이 이제는 충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기타와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는 겜 아쳐와 앤디 벨은 이 앨범을 통틀어 리암과 함께 거의 모든 곡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되었지만 좋은 음악들(특히 락엔롤)을 21세기에 재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확인 할 수 있다. 단단하게 사운드를 구성하는 법과 심플한 멜로디로 최대의 효과를 줄수 있는 악곡의 전개는 여느 밴드의 기타/베이스 담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찰진 사운드를 듣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두번째,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은 리암의 목소리이다. 사실 리암은 오아시스 시절부터 독특한 음색과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유명했고, (전에도 말했지만) 오아시스를 유명하게 해준 30%의 공은 리암의 목소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리암의 목소리는 엄밀히 말해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에 지나지 않았다. 기타/베이스/드럼과 같이 밴드의 1/4을 담당하는 질 좋은 악기였다. 하지만, 비디 아이의 리암은 분명히 달랐다. 싱글 <The Roller>에서도 그랬지만, 충분히 자신감에 차 있으며, 멜로디 그 자체를 넘어서 매력적인 무언가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앨범 전체에서도 다양한 빠르기와 리듬의 곡들 속에서 멜로디를 연주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밴드 전체를 리드하며 하나하나의 곡이 가진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결과물은 이렇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10점 만점에) 8점짜리 앨범. 물론 그들이 말한 전혀 다른 기어(Gear)는 아직 가속도 중이다. 하지만 데뷔 앨범으로는 합격점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오아시스 - 노엘 = 비디 아이>의 공식은 이제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노엘과는 엄연히 다른 "선대의 전설들에 대한 접근 방식", 그리고 "리암의 살아 숨쉬는 목소리"에 아직까지는 "팀워크 좋고, 균형이 유지되는 밴드". 오아시스의 장점을 포함하여 음악적인 다변화를 추구한 비디 아이의 데뷔 앨범은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전 우연히 아이튠즈 미국 스토어의 앨범 평을 읽어봤다. 다른 앨범들(아이돌이나 팝)에 대한 평이 서너줄에 그치는 것에 반해, 비디 아이의 데뷔 앨범에는 유독 A4 한페이지도 넘는 장문의 리뷰들이 많았다. 여전히 평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비디 아이의 데뷔 앨범은 좋다"와 "노엘이 없으니, 오아시스만 못하다". 나도 노엘을 기다리는 많은 팬들의 절절한(?) 심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2000)까지 노엘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좀.;) 하지만 난 이 앨범을 기대하면서, 혹은 들으면서 오아시스를 기대하진 않았다. 노엘을 제외했을때 당연히 밴드에서는 그의 부재가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그 부재를 뛰어 남느냐는 거다. 이만큼의 노래들, 그리고 앨범 전체를 흐르는 일관적인 감각마저도 욕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이어폰을 빼고, 언젠가는 발매될 노엘의 앨범을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더이상 노엘에게서도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와 같은 앨범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엔) 영광스럽고도 위대한 락엔롤의 시대는 이미 그때 지나갔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 이 앨범은 다른 의미에서 오아이스의 데뷔 앨범인 <Definitely Maybe>(1994)만큼의 만족을 주었다. 차분하게 완성되어 가는 스타일, 그리고 얄미운(?) 천재를 제외하고도 이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은, 사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매우 통쾌하고 기쁜일이다. 과장된 윰직임없이 담백하고 단단하게 락엔롤을 노래하는 이 앨범은 분명히 잘 만들어졌다. 차분하게 기어를 넣고 전속력의 질주를 위해 가속도를 더하는 모습. 이제 더이상 비디 아이의 앨범 리뷰에 노엘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의 다음 앨범이 모두가 바랬던 그 전속력의 질주를 보여준다면 말이다.

덧. 본문에선 말안했지만, '감동적'이라는 측면에서도 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곡들이 있다. <The Roller>와 <The Beat goes on>의 후렴구에선 왜이리 울컥하는지, 나이는 역시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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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6. 01:25 카테고리 없음

번득이는 대중적 감각이 만들어낸, 다시는 없을 펄떡거리며 살아 있는 궁극의 팝스(pops)

小沢健二(오자와 켄지)는 한국에서도 꽤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초기 시부야계 밴드인 플리퍼스 기타의 멤버로 잘 알려져있다. 이후, 현재 우리가 시부야계라고 부르는 음악쪽으로 조금 더 깊게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정한 小山田圭吾(오야다마 케이고, 코넬리우스)와 달리, 심플하고 어쿠스틱하게 음악적 행보를 정한 그는, 어느틈엔가 일본 팝씬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으며, 전성기의 그가 보여준 팝 감각은 실로 놀랍기 이를데 없다. 유려한 멜로디와 세련되게 편곡된 트랙들, 그리고 발랄한 가사와 목소리까지, 그저 번득이는 그의 감각에 대중은 놀랬으며, 지금도 당시 그의 앨범들은 일본 팝씬의 바이블처럼 당시를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래방에서 부를수 있는 굉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1994년에 발매된 이 앨범은 오자와 켄지가 가지는 팝적인 감각이 극에 달했을때 나왔다. 총 9곡의 트랙중 7곡이 싱글컷되며 전성기의 그를 정상에 올려주었다. 첫곡부터 마지막곡까지 일관된 정서는 사랑과 젊음과 팝, 그리고 팝, 또 팝이다. 대중적으로 잘 다듬어진 한장의 앨범을 마주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통속적이고, 매우 상업적이고, 또한 어쩔수 없이 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시는 없을 진실로 살아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몇번이고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그 즐거움을 향유할 가치가 있다. 이 앨범이 바로 그러하다. 17년전에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된 편곡과 몇번을 들어도 질리기 힘든 감각적인 멜로디와 리듬은 지금 듣더라도, 그리고 몇년이 지난후에 듣더라도 그 즐거움에 흐뭇해질수 있는 감각이다. 

나는 이 앨범을 처음 들은 이후, (조금 과장하자면) 이정도의 살아 숨쉬는 팝 음반을 만난적이 없다. 물론 훌륭한 팝 음반은 많다. 몇번을 들어도 처음과 같이 즐거움을 주는 수많은 명반들이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은 특별하다. 이 안에는 정말로 당시의 오자와 켄지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번득이는 감각이 있다. 정말 우연히 길일(吉日)과 길인(吉人)이 마주하여 자연스럽게 태어난 무언가처럼, 시부야계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넘어 그가 보여준 이 감각은 당시의 일본을 초월하여 세계와 소통할 만큼의, 충분히 자랑해도 좋을만한 감각이다. 다시는 없을 이 펄떡거리는 궁극의 팝스를 듣게 해준 그에겐 항상 고맙다. 지금도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기분이 그러워 이 앨범을 플레이한다. 그의 코맹맹이 소리와 뿜빠뿜빠거리는 관악 편곡만 들어도 언제고 흥겨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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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가에 왔는데, 막상 일하려고 맥북을 켜니 망할 SK브로드밴드가 왠일인지 해외 사이트쪽 접속을 막아놓았다는... 결국 일 포기, 그냥 오자켄 음악 듣다가 왠지 감동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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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4. 23:09 카테고리 없음

우리가 'indie' 라고 이름 붙인 모든 감성과 행동이 들어 있는 앨범

4년만에 새 앨범이었다. 작년에 한참을 잊고 있다가, 한 지인의 추천(내지는 전파)로 인해 다행히도 늦지 않게 이들의 신보를 접할 수 있었다. 당시엔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억척스럽게 첫인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지는 큰 틀안에서 언제고 대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변화하고 적응하고 성장하는 이들이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말이다. 사실 그랬다. 빼어난 연주실력, 악곡과 가사의 절묘한 조화로 전달되는 생생한 서사, '우린 인디예요'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듯한 보컬의 목소리까지. 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수많은 장점은 2010년이라는 시간안에서 자연스럽게 2010년의 벨 엔 세바스찬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나른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비온뒤의 작은 흥겨움처럼 앨범 전체에서 느껴지는 그들은 모습은 비록 첫 앨범과는 달랐지만,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랬다. 

오랜만에 시간이 없어서 한밤중(이라고 해봐야 10시)에 집안 청소를 하면서 들려오는 진공청소기의 소리가 시끄러워 헤드폰을 들었다. 청소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다가는 그냥 이 앨범을 다시 들었다. 아, 좋구나. 그래 이게 바로 벨 엔 세바스찬이지,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신기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내가 지난 2010년 한국의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거의 모든 것이 그 한장의 앨범에 자리하고 있었다. 신세기의 불안감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포기와 반항, 허무한 일상을 극복하는 자아의 발견, 그리고 언젠가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마음까지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대단했다. 2010년 한국의 밴드 음악이 가려고 했던 모든 방향성의 원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것이다. 2010년의 세계는 하나였다. 그럼 누구라도 암묵적으로는 그 세계의 본질과 본질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밴드 음악이든, 일본의 인디씬이든, 혹은 영미권의 송라이터 누구라도 그러한 무의식적인 의무감이 있었을 것이다.(다른 의미에서 위대한 메인스트림의 댄스/발라드 음악은 이 의무감에서 제외하도록 하자, 목적이 다르다. 이것과 그것은 창작의 목적이 약간 다르다)

어찌되었든 나는 2010년 나의 음악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 이유는 아마 이들의 음악이 그때, 우리가 가졌던 현실 인식을 가장 본질적으로 표현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성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대중이 자신이 느꼈던 현실의 감각을 이 앨범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이 음반은 충분히 대중적이다. 연주는 여전히 유려하고, 흥겹고도 감성적이며, 모든 트랙에는 그들만의 행동과 의지가 담겨져 있다. 게다가 대중적이면서 포괄적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사랑 노래는 결국 우리가 그 순간 가졌던 삶에 대한 노래인 것이다. 한번에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친절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우리가 정성을 다해 듣는 만큼, 그들도 정성을 다해 이 앨범을 만들었을 것이다. 두번째 감상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은 다행이다. 우리가 'indie' 라고 부르는 모든 감성과 행동이, 그리고 2010년의 순간들이 그 안에 있다는 것. 한밤중에 밀린 청소가 아니었다면 간과하고 넘어갔을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은 청소도 좋다.
posted by rubber.soul
2011. 2. 20. 12:22 카테고리 없음


예술로 승화된 일상의 찌질함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희망의 순간



맨하튼 스타일을 표방하는 구미(歐美가 아니라, 경북 구미) 출신 두명의 청년이 들려주는 10cm의 감성은 매우 복합적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그들의 멜로디, 곡구성, 그리고 분위기는 충분히 뉴욕의 잘나가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보여주는 세련됨에 맞닿아있다. 오히려 왠만한 이들과 비교해봐도 지지않을 만큼 꽤 괜찮은 미장센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가사는 좋게 말하면 한국의 21세기, 20대의 청년들이 느끼는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이 생겨나게 한 사회적인 부조리와 관련이 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브로콜리 너마저”와 같은 밴드가 생각을 풀어내는 화법과 같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친 세상”을 노래하던 “브로콜리 너마저”와 이들 10cm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출발점은 동일하다. 바로 나의 삶에 대한 작은 성찰,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이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이다. 비판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무게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전통적인 찌질함의 대명사 “윤종신”씨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찌질함의 극치이다. 하지만 그 찌질함은 정말로 감동적이다.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살아왔다면 절대 보여줄수 없는 심도 깊은 찌질함, 그리고 갈고 닦은 찌질함으로 세련되고 흥겨운 음악을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10cm라는 밴드이다.


작년 혜성처럼 음반시장에 등장하여, 몇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디지털 싱글/EP를 발매하며 입소문과 공연만으로 열광적인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이들이 드디어 2011년 첫 앨범을 발매했다. <1.0>이라 이름 붙은 이 앨범은 그들이 표방하는 맨하튼 스타일(?)의 세련된 앨범으로, 그간 보여주었던 <기타+젬베+보컬>에서 벗어나 다양한 악기를 도입하고, 다채로운 구성을 더했으며, 좋은 환경에서 녹음되었다. 이제 밴드는 자력으로 충분히 담배, PC방비, 커피, 데이트 비용을 댈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아마도) 다음주쯤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선정하는 금주의 앨범류의 차트에 (당연히) 선정될 것으로 보이니, 첫 앨범으로 이정도면 성공 아닌가?


부모님께 앨범 첫곡부터 실망을 안겨드릴 것 같다던 솔직한 가사(노골적인 일수도)의 <Kingstar>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우정과 채무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지나간 사랑에 울기도 하고, 담담하게 익숙한 사랑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고, 바보처럼 설레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기도 하며, 게다가 음.. 말로 표현하긴 좀 어려운 몇가지 진한(?) 비유들까지 들어 있다. 아마도 이 앨범은 첫곡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적으로 열광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으며,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께 앨범 전체적으로 충격을 안겨드릴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KBS 심의에서 몇곡 걸릴거 같음)


앨범의 전체적인 감성은 (좋게 말하면) 일상에 대한 솔직함이요, (다른 의미에서는) 21세기 한국에서 20대가 살아가는 찌질한 모습(혹은 감성)이다. 몇년전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왔던 책, <88만원세대>의 내용처럼 우리의 20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한 경쟁의 도가니에 던져지고는, 승자만이 윗세대가 쥐어준 손톱의 때만큼의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실 앞에서 아무런 저항(혹은 포기)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무덤덤하게 일상에 순응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현실의 부조리를 노래한다. 치열하게 고민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그냥 조용히 그곳에 있을 뿐이다. 


10cm의 음악은 바로 “부조리의 타파”와 “현실적 순응”사이에 있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힘든 이 현실속에서 현실은 인정하지만, 절대로 그 현실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리고 쉬운 언어로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앞에서 자신들이 처한 찌질한 상황을 노래한다. 하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 가장 잘하는 것,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그 생각을 모두에게 전한다. 가사는 매우 구어(口語)적이며, 심지어 너무 개인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21세기적인 詩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의 진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들의 구어는 분명히 메이저 댄스 음악씬의 구어 가사(예를 들면 “사랑한다고 문자라도 남겨줘”나, “너의 미니홈피 제목처럼 웃자” 같은)와는 의미가 다르다.


그들의 음악은 충분히 세련되었고, 흥겨우며 즐겁다. 이 사실만으로도 10cm는 충분히 그 존재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갈고 닦아 예술로 승화된 일상의 찌질한 감각이 보여주는 감동, 그리고 그런 가사들이 지금의 리스너에게 인공적인 구어체 댄스 음악 만큼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간 맨하튼 스타일의 절정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언제까지고 이 “찌질함”이 그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