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0. 12. 4. 12:20 카테고리 없음

<네티즌 리뷰> 과하지 않은 노이즈와 부족하지 않은 감성이 그려내는 질주감과 뒤틀림의 바람직한 융합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골방에서 기타와 함께 8년간 내공을 쌓던 소심한 소년은 2008년 [자가당착 (自家撞着)]이라는 앨범을 발매하면서 공식적(?)으로 "모던 영재"라는 칭호를 얻음과 동시에, 21세기에 그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90년대 홍대씬, 그리고 밴드씬을 재현해주었다. 골방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진행되어온 그의 창작 행진은 자가당착이 아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아도취(自我陶醉)를 넘어 리스너의 귀를 신선하게 흔들어주었다. 그로부터 2년, 소심하던 소년은 다시 돌아왔다. 밴드 음악을 넘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던 약속을 지키며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Yet]을 만든다.

[Yet]은 그가 데뷔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심플하고 대담하게 해석된 90년대 밴드 음악에, 변함없는 감성과 세밀한 구성을 더한 앨범이다. 첫 곡 '키'부터 시작되는 전자음과 오토튠은 이번 앨범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과 자기 성찰을 통한 그의 감성, 그리고 전작부터 이어져오던 상쾌한 기타 리프와 그에 동반되는 기분 좋은 질주감. 여기까지라면 그는 단순히 "한때 모던 영재였던 가수"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시퀀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댄서블한 악곡 전개와 헤비한 리프까지 사용하면서, 이를 통해 질주하는 젊음과 뒤틀린 21세기의 감성을 보란 듯이 융합하여 두 장의 앨범만에 발전된 정체성을 보여준다.

선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일은 손쉽고, 때로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익숙한 무언가는 대체로 "평균"이상의 기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유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선 90년대의 감성과 심플한 구성만으로는 분명히 "역부족"이다. 나루는 두 번째 앨범을 통해 2010년의 7월을 매료시켰다. 과하지 않은 노이즈와 부족하지 않은 감성, 그리고 트렌드를 잊지 않는 감각으로 질주감과 뒤틀림의 접점을 세련된 미장센으로 이어붙였다. 반짝하는 모던 영재가 아니라, "실력 있는 뮤지션 나루"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나루 자신이 참고서로 삼은 90년대의 많은 뮤지션들이 없었다면 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90년대의 빅 스타(?)들이 당시 보여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신선하고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 장의 앨범을 통해 그가 가진것이 전대의 유산을 해석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그리고 따땃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감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직(yet)이다. 이제는 바람직한 융합을 넘어 겹겹이 쌓인 무언가를 꿰뚫수 있는 통찰력과 관통력이 필요하다. 바늘과 실은 이미 그의 손에 있다. 남은 것은 정확하게 길을 찾는 것뿐. 리스너는 다만 즐겁게 그것을 기다릴 뿐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