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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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8. 22:48 카테고리 없음

물론 국카스텐(Guckkasten)은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무언가로 규정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은 정말로 온전히 "국카스텐의 음악"이라고 표현할수 밖에 없었다. 말로 표현하기엔 그들의 음악은 너무 그들스러웠고, 다른 비교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역시 실망은 없었다. 새 EP <Tagträume>을 처음 들었을때, 그 음악은 여전히 국카스텐의 음악이었고, 펄떡거리며 살아 숨쉬는 호흡 그 자체였다. 그들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다. 날것을 효과적으로 정제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말이다.

100%의 개인적인 감정, 혹은 감상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는 이 작업을 위해서 이들은 충분히 숙고하고, 노력한다. 그래서 청자는 들을 수 있다. 그들이 개인, 혹은 집단적으로 지니는 소규모의 경험과 감각을 온전히 들을 수 있다. 이정도로 100%의 날것과도 같은 감각을 전해주는 음악을 들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그 100%의 날것인 소규모의 경험과 감각이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없이 청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에너지의 집약인 경험과 감각이 원초적이고 심플한 방식으로 청자에게 전달된다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전위예술이 그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들의 전달방식은 충분히 집약적이고 영리하다.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들을 사용하여 세분화된 에너지, 즉 감각과 경험을 분할해서 배치하고, 그 부분과 부분이 원래 하나라고 느낄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접착"한다. 참으로 집약적으로 원초적인 음악. 그것이 바로 내가 들은 <Tagträume>의 느낌이다.

극과 극으로 이어지는 이 앨범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다. 형식은 단지 그들의 경험과 감각을 온전하게 전하기 위한 수단일뿐. 정말 중요한 것은 날것을 효과적으로 정제해여 100%의 확률로 전해주는 그들의 능력. 그리고 그 온전한 날것을 감상할 수 있다는 즐거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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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즈 스토어에서 비틀즈 음반 다량 구매한 김에 오랜만에 비틀즈에 대한 글이나 더 써볼까 했는데, (서른살에 다시 듣는 비틀즈 음반별 리뷰라던가..) 국카스텐의 음반에 눈에 걸려서 한마디 안하고 넘어갈수가 없었음. 하하.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