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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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1. 01:22 카테고리 없음


경험하지 못한 추억을 진짜라고 여기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제8극장은 이름만큼이나 특출나다. 혹은 특이하다. 록큰롤을 기반으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올드팝과 뮤지컬과 디즈니풍의 멜로디와 클래시컬한 구성들을 놓고보면 분명 현재 한국 인디 음악씬에서 유례없이 잡식성의 특이한 밴드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런 다양한 요소들을 오로지 지극의 흥겨움을 위해 잘 버무릴 수 있다는 것은 특출난 능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제8극장이라는 밴드는, 정말로 흥겹고 즐겁고 특이하고 특출났다. 사실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밴드들이 그렇듯이) 연속적이지 않은 많은 추억과 기억의 편린들이 나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치만, 결국 밴드가 도달한 곳은 특이한 음악적 형식의 내실을 가득 채워줄 정도의 이야기꺼리. 그리고 그 이야기꺼리가 얼마나 생생한지 내가 경험하지 않고도 내가 가진 추억이라 느끼게 만들어준다. 소설보다 더욱 생생한 공감각적 스토리텔링.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에서 제8극장은 그들의 커리어에 진하게 방점을 찍었다.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기전에 지난해 발매된 EP <대항해시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앨범, 특히 <대향해시대>라는 곡은 놀랄만큼 잘만들어졌다. 가사의 힘과 멜로디에 담긴 흥겨우면서도 쓸쓸한 느낌은 정말 이 노래의 속편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다로 떠나서 어떻게 된거야?' 라던지, '보물이라도 찾은거야?' 같은 물음들이 머리속에서 떠올랐을 정도로 몰입도 강한 트랙이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을 처음 대면 했을때 해골 마크가 그려진 해적의 표시를 보았을때, 개인적으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의 속편이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앵무새 파리넬리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마초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방식으로 지나간 좋은 시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 추억은 분명히 '만들어진' 것이다. 밴드의 누구도 실제로 해적이었을리 없을 뿐더러, 청자중 누구도 그러한 경험을 해봤을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한국이라는 공간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은 마치 화자와 청자가 공감하고 있는 공통의 기억처럼 마지막 트랙까지 몇 막의 희곡을 떠올리게 한다. 세밀하게 만들어진 추억의 단편들은 직설적이고 선동적이면서도 충분히 은유적이고 우화적이다. 그들이 말하고 내가 느끼는 바다는 바다이면서도 바다가 아니다. 그리고 그 많은 두려움과 기대감은 바다에 대한 기대감이면서 또한 우리 삶 속의 무언가에 대한 동일한 기대감에 대한 표현이다. 또한 수많은 협잡군과 비열한 사기꾼들은 바다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걱정하는 형제들'이 되어 스토리텔링에 빠져든다. 참으로 매력적인 경험이 아닌가? 오랜만에 느끼는 일관된 감정의 지속적인 전달이 아닐 수 없다.

진심은 무엇인가? 오로지 삶의 성찰을 통해 관조적으로 내 주변의 작은 것들부터 논해야 진심인가? 혹은 정형화된 틀로써의 형식속에서 청자가 원하는 무언가를 들려줘야만 그것을 진심어린 음악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이들의 음악이 특이한 것은 (특이 이 앨범이) 매우 선동적이며 강력한 동조를 구하는 음악이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다. 마치 40년만 먼저 발매되었다면 '금지곡'이 될 것같은 가사들은 분명히 거북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느샌가 한국 인디씬의 좋은 노랫말들은 관조적이고 소비자 중심의 감정전달, 그리고 청자를 향한 무한한 편안함과 구애를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랫말은 불편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며 이야기중심적이고, 게다가 선동적으로 청자의 동조를 구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멜로디의 부수적인 포현방법으로써의 가사가 아니라, 오히려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음악적인 방식을 채용한 것처럼 던져지는 트랙들은, 불편하지만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소설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문학적인 이기성, 혹은 작가의 자존심과도 같다. 동조를 바란다면 가끔은 동조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 편안한 화자들에게 익숙해져있더라도, 가끔은 괜찮지 않은가.

심혈을 기울였다는 믹싱은 매우 만족스럽다. 밴드말처럼 빈티지의 복각이 아닌, 제8극장의 색깔을 보여주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트랙인 <대항해시대>의 믹싱은 탁월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EP 버전이 더 매력적이지만) EP 버전이 첫 트랙으로써 닻을 올리는 새벽의 설레이는 느낌을 보여주었다면, 앨범 버전은 마지막 트랙으로 다시한번 바다를 향해 석양을 맞으면서 떠나가는 느낌이 살아 있다. 다소 연극적인 장치들(가사와 코러스 등)과 과장된 곡 진행만으로 이들의 진심을 판단하는 愚(우)를 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한편의 연극을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청자가 공감에 대한 일말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냥 나와 관계 없는 한편의 상상의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자.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꽤나 멋진 음악,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posted by rubber.soul
2011. 5. 7. 02:27 카테고리 없음


나의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럽다고 느끼게 해주는 진심.

작년 첫 EP인 <옥탑라됴>를 통해서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인상적인 첫 감상의 어느 아침. 나는 그 음악속에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다행이라거나 축복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아침 이들의 노래를 들었을때 오랜만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감정을 조금 더 깊고,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나에게 이 감성을 곱씹어 볼수 있을 만큼의 지나간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옥상달빛의 음악이 그런 나의 추억들을 새삼 기억나게 해주었다는 것. 게다가 실감나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의 나(혹은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따사로운 볕과 가끔 그 햇빛을 가려주는 작은 그늘만 있으면 행복했다. 시덥지 않은 농담에 웃어줄 누군가가 있으면 마냥 좋았고, 싸구려 커피 한잔에도 즐거워졌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고, 난 그런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이다. 물론 지금의 나와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혹은 우리)에겐 계산보다는 기분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많았다.

청아한 목소리와 보사노바부터 왈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송라이팅, 잔잔하지만 완급 조절, 그리고 해학과 아련함까지 두루두루 전해주는 옥상달빛은 분명 좋은 노래를 만드는 뛰어난 송라이팅 그룹이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도 흠잡을 곳 없는 이 두 여자의 진짜 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아이돌 음악만큼 쏟아져 나오는 어쿠스틱/째즈 성향의 수많은 음악들, 특히 '여신'을 자/타칭하며 숱하게 등장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서 왠지 모를 '싸구려' 감성을 느꼈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좋은 음악들도 엄청나게 나왔지만, 아이돌의 홍수처럼, 여신들의 음악도 홍수였던 것은 틀림없다) 옥상달빛이 싸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장면에서도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진지하고, 또한 진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웃음의 순간에서도 이들은 성실하다. 성실하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전달된 진심이 청자에게 다가가서는 추억을 울린다. 마치 '너의 추억은 매우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듯이 나의 지난날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많은 밴드들이 따스하고 행복한 순간을 노래한다. 따사로운 햇볕아래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저 넘어 창밖을 향해 달콤한 가사를 노래한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화자의 진심이며, 청자는 어디까지 감정을 이입하고 믿음을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 그리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의 추억으로 돌진하여 잊혀졌던 순간을 살려내는 진심이 그리웠다. 그리고 나의 추억이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달콤한 속삭임이 듣고 싶었다. 달지만 거짓이 아닌 그말이 말이다. 

그래서 옥상달빛의 음악은 좋다. 나에게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러운 것이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 진심어린 배려가 마음에 든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또 예쁘고 즐거운 그들의 음악속에 그런 진심이 있어서 다행이다. 기교나 스타일따위의 것을 넘어선 그것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진 노래들. 그게 옥상달빛의 노래다. 아코디언과 실로폰 소리가 참 정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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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2010년 어느날,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난 이런 기분이었다.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이어폰 속에 흘러나오는 감성은 90년대 홍대앞의 수수함이었다. 너무 포괄적인 감상평이 될수도 있으니,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한가한 토요일 오후 브런치를 빙자해서 학교앞 친구의 옥탑방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빵집에서 산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고는 햇빛 아래 그늘을 찾아서 담배를 한대 피며, 시덥지 않은 진담들을 나누던 그때가 떠오른다. 만일 나에게 옥탑방에 사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그리고 한가로운 토요일과 따사로운 햇살이 없었다면, 그리고 시덥지 않은 진담에 귀를 기울여줄 누군가(들)이 없었다면 옥상달빛의 음악은 연휴가 끝난 화요일 출근길, 나의 감성을 이리도 자극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축복이요, 다행이라는 느낌. (2010.3.2)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