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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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0. 12:22 카테고리 없음


예술로 승화된 일상의 찌질함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희망의 순간



맨하튼 스타일을 표방하는 구미(歐美가 아니라, 경북 구미) 출신 두명의 청년이 들려주는 10cm의 감성은 매우 복합적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그들의 멜로디, 곡구성, 그리고 분위기는 충분히 뉴욕의 잘나가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보여주는 세련됨에 맞닿아있다. 오히려 왠만한 이들과 비교해봐도 지지않을 만큼 꽤 괜찮은 미장센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가사는 좋게 말하면 한국의 21세기, 20대의 청년들이 느끼는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이 생겨나게 한 사회적인 부조리와 관련이 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브로콜리 너마저”와 같은 밴드가 생각을 풀어내는 화법과 같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친 세상”을 노래하던 “브로콜리 너마저”와 이들 10cm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출발점은 동일하다. 바로 나의 삶에 대한 작은 성찰,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이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이다. 비판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무게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전통적인 찌질함의 대명사 “윤종신”씨가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찌질함의 극치이다. 하지만 그 찌질함은 정말로 감동적이다. 하루하루를 대충대충 살아왔다면 절대 보여줄수 없는 심도 깊은 찌질함, 그리고 갈고 닦은 찌질함으로 세련되고 흥겨운 음악을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10cm라는 밴드이다.


작년 혜성처럼 음반시장에 등장하여, 몇장의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디지털 싱글/EP를 발매하며 입소문과 공연만으로 열광적인 매니아층을 형성했던 이들이 드디어 2011년 첫 앨범을 발매했다. <1.0>이라 이름 붙은 이 앨범은 그들이 표방하는 맨하튼 스타일(?)의 세련된 앨범으로, 그간 보여주었던 <기타+젬베+보컬>에서 벗어나 다양한 악기를 도입하고, 다채로운 구성을 더했으며, 좋은 환경에서 녹음되었다. 이제 밴드는 자력으로 충분히 담배, PC방비, 커피, 데이트 비용을 댈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아마도) 다음주쯤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선정하는 금주의 앨범류의 차트에 (당연히) 선정될 것으로 보이니, 첫 앨범으로 이정도면 성공 아닌가?


부모님께 앨범 첫곡부터 실망을 안겨드릴 것 같다던 솔직한 가사(노골적인 일수도)의 <Kingstar>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우정과 채무관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지나간 사랑에 울기도 하고, 담담하게 익숙한 사랑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고, 바보처럼 설레이는 누군가를 발견하기도 하며, 게다가 음.. 말로 표현하긴 좀 어려운 몇가지 진한(?) 비유들까지 들어 있다. 아마도 이 앨범은 첫곡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적으로 열광적인 무언가를 담고 있으며, 아마도 그들의 부모님께 앨범 전체적으로 충격을 안겨드릴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KBS 심의에서 몇곡 걸릴거 같음)


앨범의 전체적인 감성은 (좋게 말하면) 일상에 대한 솔직함이요, (다른 의미에서는) 21세기 한국에서 20대가 살아가는 찌질한 모습(혹은 감성)이다. 몇년전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왔던 책, <88만원세대>의 내용처럼 우리의 20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한 경쟁의 도가니에 던져지고는, 승자만이 윗세대가 쥐어준 손톱의 때만큼의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실 앞에서 아무런 저항(혹은 포기)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무덤덤하게 일상에 순응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현실의 부조리를 노래한다. 치열하게 고민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못한다. 그냥 조용히 그곳에 있을 뿐이다. 


10cm의 음악은 바로 “부조리의 타파”와 “현실적 순응”사이에 있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힘든 이 현실속에서 현실은 인정하지만, 절대로 그 현실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리고 쉬운 언어로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앞에서 자신들이 처한 찌질한 상황을 노래한다. 하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 가장 잘하는 것,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그 생각을 모두에게 전한다. 가사는 매우 구어(口語)적이며, 심지어 너무 개인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21세기적인 詩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의 진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들의 구어는 분명히 메이저 댄스 음악씬의 구어 가사(예를 들면 “사랑한다고 문자라도 남겨줘”나, “너의 미니홈피 제목처럼 웃자” 같은)와는 의미가 다르다.


그들의 음악은 충분히 세련되었고, 흥겨우며 즐겁다. 이 사실만으로도 10cm는 충분히 그 존재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갈고 닦아 예술로 승화된 일상의 찌질한 감각이 보여주는 감동, 그리고 그런 가사들이 지금의 리스너에게 인공적인 구어체 댄스 음악 만큼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간 맨하튼 스타일의 절정으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언제까지고 이 “찌질함”이 그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