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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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8. 20:41 카테고리 없음


더욱 많은 이들에게 진심을 전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등은 생략하겠다. 어차피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포맷과 출연진, 그리고 결과에 대해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단 하나였다. 시청률만을 의식한 서바이벌 시스템? 누구도 감히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전설들의 서열화? 고작 예능 프로그램따위에서 죽을 듯이 열창하는 가수들? 전부 아니다. 노래 중간에 삽입되었던 가수들의 나레이션과 개그맨들의 지나친 오바로 인한 곡에 대한 '몰입 방해'. 이것이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분이 상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 다른 부분에 있어서 나는, 적어도 공중파의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중에서 꽤 괜찮은 방송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잡음이 있었다. 주말 예능의 한복판에 올려진 7명의 뮤지션들이 살얼음판과도 같은 그곳에서 그간 쌓아온 예술인으로서의 명예와 기타 사회적인 무언가를 잃지는 않을까하는 우려, 그리고 그들을 그 경쟁의 한복판에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인 갖가지 병폐들까지 인용되면서, 마치 프로그램이 ‘그들을 강제적으로 그곳에 올린 듯’ 한 느낌마저 들게 하였다. 맞는 말이다. 이미 케이블TV와 공중파를 거쳐 검증된 리얼 서바이벌 형식은 2011년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감각을 자극하는 포맷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MBC와 일밤 역시 적극적으로 그 포맷을 차용하였고, ‘과다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소위 ‘병맛’ 프로그램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 프로그램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비난은 ‘강제로 천박한 예능 무대에 올려진 7명의 위대한 뮤지션들’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혹은 죽을 힘을 다해 7등을 면하기 위해 '노래로써 예능을 하는' 그들이라는 말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7명의 뮤지션들은 자의로 그 무대에 섰으며,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에 대한 인지도의 향상일수도 있고, 소외된 장르에 대한 대중적 어필일수도 있으며, 과거로 잊혀진 자신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일수도 있다. 누구하나 그 무대에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긴장은 했지만) 그 무대를 즐겼다. 긴장감이 흐르는 무대는 나쁜 것인가? 아니면 감히 예능 프로그램 따위가 위대한 뮤지션들에게 긴장감을 요구하는 것이 되도 않는 일들인가? ‘음악은 무대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말만으로 그들의 긴장어린 열창을 ‘주말 예능에서 살아남으려는 가련한 몸부림’으로 만들순 없다. 그들은 분명 긴장하며 무대를 즐겼다.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 꼭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악영향이 더 클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의 탈락은 분명히 그 가치가 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중의 한표에 의해 탈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감히 어떤 가수나 평론가가 이들을 탈락시킨다는 말인가?) 방송이후 며칠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상에서는 프로그램의 가혹성을 이야기하고, 가수들이 떨어지는 참혹한(?) 사태에 격분하며 자본주의 공중파 방송의 잔인함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다.) 음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적지 않게 이런 저항감을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순위 매기기, 그리고 탈락에 대한 반발. 하지만, 그들이 심하게 반발하는 서열 결정이나 탈락은 사실, 음반 판매와 무엇이 다른가? 누군가 인기를 얻고, 누군가는 음반이 잘 팔리고, 그리고 누군가는 인생에서 탈락하는 모든 행위의 기본은 대중의 관심이다. 그리고 대중의 힘이다. 그런데도 짜여진 판이라고 언제까지 그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관심의 시작은 노출이다. 아이돌 음악이 득세하는 것은 그만큼 노출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예능이든, 음악 프로든 아이돌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들을 기회가 없으면, 사실 대중적으로 “없는 음악”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가지고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 대중의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많은 뮤지션들이 앞으로도 계속 주말 황금 시간대의 예능에 나와 주기를 바란다. 많이들 말한다. “관객이 한명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맞는 말이다. 진심으로 그 노래를 즐겨준다면 그걸로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를 진심으로 듣는 사람이 한명이 아니라, 백명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큰 진심이 그 사이에서 생겨날지도 모른다. 서바이벌이라는 짜여진 판속에서 고분분투할 그들이 대단하다. 그 판을 혹시나 뒤집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살짝 하게 만든다. 한명이 아니라 백명, 아니 천명의 진심이 모일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한명의 진심은 연애만으로도 충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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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런 글은 쓴 이유는, 그냥 요 며칠 올라오는 수많은 트위팅을 보다가 문득 나도 뭔가 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들의 진심이 조금은 왜곡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비보다가 글을 남기네. 하하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