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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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20. 22:00 카테고리 없음

지난 2010년 12월 19일. 저녁 6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2번째 스튜디오 앨범 발매 기념 앙코르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전에 놀랐던 것은 두가지. 한가지는 예상(?)보다 엄청난 밴드의 인기.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추운 겨울 저녁, 관람객들을 야외에 줄 세우던 공연 기획사의 무능력함(!)이었다. 그렇게 스탠딩 300번대 초반 입장권을 가지고 우리는, <졸업>을 듣기 위해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은 너무 좋았다. 이들은 이제 "풋풋하고 신선한"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스쿨 밴드같은 부류가 아니다. 모든 곡들은 충분히 프로페셔널했다. 잘 정돈된 음향들. 기타톤 하나, 드럼 사운드 하나에도 신경을 쓴듯 귀에 거슬리는 부분따위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덕원의 목소리는 한없이 감동적이었으며, "계피"의 빈자리를 채우는 멤버들의 역할분담, 그리고 편곡(특히 보편적인 노래의 편곡!)으로 더이상 전(前) 멤버 계피와는 아무 상관없이, 밴드는 훌륭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해냈다. 풋풋함을 잃지 않으면서 절대 방심하지 않았던 이번 앨범 <졸업>의 느낌과 마찬가지로 공연은 훌륭했다. (물론 공연 중간부분, 덕원의 무리한 관객 호응 유도 및 풍선 투척 등은 조금 과도한 설정이 아니었나한다. 하지만 연말이니까, 라면서 넘어가도록 하자)

공연에선 그들이 지금까지 발매했던 모든 앨범들에서 충분히 균등한 선곡이 이루어졌으며, 관객의 입장에서는 눈을 감고 그들의 음악이 지나온 일종의 역사(?)를 떠올려도 될 만큼 많은 곡이 연주되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일반적으로 "위로의 음악"이라고 불린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을 주고, 모두 당신과 같이 외롭지만, 내가 있잖아.. 라며 청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준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무엇에 대한 위로란 말인가? 각박한 삶, 실패한 사랑, 아련한 추억? (개인적인 견해로) 그 위로는 바로 "아직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위로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을 위한 노래.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음악인 것이다.

내년이 되면, 나는 조금 더 성장해서 어른스럽게 이별을 말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일에 성공하며, 풍족한 인생을 누리겠지, 라는 것은 21세기 대다수의 어른들이 희망하는 "내년의 소망"에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올해보다 조금 더 세상에 적응하여, 즉 "어른스러워져서" 작년의 자신을 "꼬꼬마 친구" 보듯이 경시할 수 있는 어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과연 그렇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들은 노래한다. 당신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될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언제까지고 어른이 되지 못한 많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계속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을 거부하는 일종의 치기어린 마음만이 이들에게 존재하진 않는다. 첫번째 정규 앨범에 비해 훨씬 더 자신들의 감정과 이야기에 집중한 이번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밴드"로써의 지향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80년대 대학 밴드 동아리의 풋풋한 촌스러움을 배제 한채, 세련된 사운드과 구성,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앨범은 그래서 전작보다 훌륭하다.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잘 하고 싶은 것에 많은 것을 쏟아부은 느낌이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앞으로도 기나긴 여정을 가야하는 밴드이다. 아니, 언제까지고 계속 그 길을 따라 모든 어른들의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밴드이다. 이런 느낌은 마치 90년대 "델리스파이스"가 <차우차우>를 부르며 충격(!)적으로 데뷔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다. 그 신선함, 그리고 키치함은 이전까지의 모든 것과 달랐던 것이다. <보편적인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딱 그 느낌이었다. 그 풋풋함, 그리고 당돌함.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방식도 달랐지만, 그 느낌만은 비슷했다. 하지만 "델리스파이스"는 사실 지금, 없다. 5번째 앨범 <Espresso> 이후 그들의 음악은 기억나지 않는다. 신선함과 키치함의 유통기한은 딱 5장의 앨범까지였던 것이다."브로콜리 너마저"가 앞으로도 기나긴 여정을 가야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다. 전작의 풋풋한 촌스러움, 이번 앨범의 세련된 위로송을 다음 앨범에서도 만나게 된다면 분명 이들도 언제까지고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대중과 타협하거나, 세상에 적응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지금처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채,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작년과는 다른 방식의 위로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한살 나이를 먹고, 그들도 한살 나이를 먹는 것은 거부 할수 없는 사실이니까. 아무리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은 흐르니까 말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