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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2.07 Now They are on iTunes store, The Beatles.
2010. 12. 7. 22:56 카테고리 없음


21세기 마케팅의 화두는, 소비자 중심의 판촉. 그 중에서도 감성에 기대어 소위 "나도 모르는 지름"을 유발하는 것은 더없이 강력한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었다. 한국, 특히 전자제품 분야에서도 감성 마케팅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는 어느새 하나의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아날로그적인 제품 디자인, 전자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그리고 오직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유저 친화적인 면까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에 더없이 유효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감수성에 동조하기는 쉽지 않다. 너도나도 비슷한 컨셉만을 내세우는, 마치 일부러 비슷한 모양으로 찍어내는 듯한 제품들, 그리고 예술작품들을 볼때 마다 "내 감성은 너의 그것과는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런 현실속에서 정녕 감성 마케팅이란 무엇인지 보여줄 사건이 얼마전에 있었으니, 그게 바로 그 위대한 비틀즈(The Beatles)가 온라인에 입성한 바로 그날이다.

스티브 잡스는, 2010년 11월 17일이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날, 클라우드 서비스에 기반한 아이튠즈가 새롭게 선보일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결국 그 잊지 못할 날은 비틀즈가 온라인 음원을 처음 공개한 날이 되었다. 아무일도 아니라고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고작 지나간 밴드의 음원이 스토어에 등록된 것뿐이라고 코웃음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지난 몇주간 비틀즈의 음반들은 챠트 상위권에서 꾸준히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이미 있는 비틀즈를 다시 샀다. 나 역시,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 7장의 음반을 다시 구매하게 되었다. 애플은 단순히 지나간 밴드의 음원을 판 것이 아니다. 비틀즈의 음원을 다시 사게 만든 것은, 그들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사게 만드는 것. 그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그것이 전혀 대체품을 필요로하지 않는 영구한 것이라면 소비자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감성에 의한 호소뿐이다. 이미 비틀즈의 음원은 온라인에서 (물론 불법이지만) 넘쳐나고, 집에 누구나 한두장쯤은 (One 앨범이나 앤솔로지라도) 그들의 음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스셋이 팔린다. 새롭게 마스터링된 음원, iTunes-LP를 통해 화면에 구현되는 음반 자켓을 비롯한 아트웍스. 그리고 앨범마다 들어있는 짧지만 강력한 도큐먼트 필름까지. 한번 보고는 도저히 사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이 방법에, 대다수의 음반을 가지고 있는 나 역시, 내 "아이폰"으로 비틀즈의 리마스터링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성의 마비를 느끼며 순간적으로 음원을 구매했다. 내 아이폰으로 듣는 내 비틀즈 음악. 나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너무 충분했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강력한 판촉 수단에 당한 것이.

<Help>앨범부터 <Let It Be>까지 총 7장의 음반을 사면서 나는 내가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왜 최고의 밴드인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애플이 판건 단순한 음원이 아니었다. 애플은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을 정말 멋지게 재포장해서 제공해주었고, 소비자는 그 어느 감성보다 더 위력적인 "추억"이라는 무기에 당했다. 물론 기분 나쁘게 당한것은 아니다. 그 추억속에서 자신을 보고, 또 나만의 비틀즈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멋진일이니까. 이정도면 충분히 돈 값한다. 아이폰으로 듣는 <Abbey Road>의 후반부 메들리가 얼마나 멋진가? 이럴땐 아이폰이 갭리스 재생을 지원해준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운거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