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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4.07 야광토끼, <Seoulight>(2011) / 네이버 이주의 발견-국내(11년 4월 1주)
2011. 4. 7. 17:43 카테고리 없음

<네티즌 리뷰> 신선한 등장을 통해 한정된 역할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발견하다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한국에는 양질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들려줄 수 있는 '좋은' 싱어송라이터가 많이 있다. 또한,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그룹은 그 안에서 적지 않은 부분은 담당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훌륭한 활동을 보여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규정하는 수식어 중엔 유독 '전형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고 때로는 고즈넉하게, 때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 일상 속의 나와 너, 그리고 그 사이 소통의 문제를 음악으로 풀어놓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음성으로 대표되며 세간의 눈에 '전형적'이라고 비춰지는 그 많은 여성 뮤지션들은, 생각해보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좋은 음악'을 들려주며 우리 곁에 항상 있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성향은 세분화, 혹은 진화를 거듭하며 홍대 앞의 여신이 나타나기도 하고, 국민 여동생급의 뮤지션들도 생겨나고 혹은 관능적인 언니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형적'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그들을 규정하는 수식어로 기능한다.

검정치마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임유진'의 솔로 앨범이 등장했다. '야광토끼'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밴드에서 송라이팅을 담당하지 않은 멤버의 솔로 앨범은 대체로 별로'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혹은 무려) 9곡이 담긴 야광토끼의 첫 앨범은 분명히 '좋다'. 지금까지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을 담고 있기에 더욱 좋다.

야광토끼는 기본적으로 밴드적인 화법에 충실하다.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한 악기 간의 역할 배분, 그 속에서 하나의 악기로써 매력을 발산하는 보컬, 앨범 전체를 흐르는 일관된 감성의 전달, 그리고 탄탄한 곡 전개까지, 분명히 이 앨범은 밴드 음악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앨범에는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도입되고 있는 80~90년대의 비트들과 그것을 표현해주는 신디사이저의 전자음은 세련되고, 적당하다. 그리고 그 적당함은 지나간 추억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히 아련한 비트감을 주면서도, 이 음반이 21세기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또한, 무표정하기만 할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의외로 상큼하고,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기자기하다. 야무지게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 있다. 밴드적 화법에 세련된 복고미(復古美), 그리고 상큼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우리는 야광 토끼의 음악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성이라는 '누명 아닌 누명'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필요하게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볍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부족하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과하지 않다.

그간 레트로 열풍에 반응하여 쏟아져 나온 메이져와 인디 음악씬의 수많은 시도들이 보여주었던 '그럴려고 그러는' 오류를 이 음반은 범하고 있지 않다. 단지 '복고'적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그 트렌드를 충족시키기 위해 과장된 복고풍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물론 첫 트랙을 듣는 순간 '아!' 하고 반응할 정도로 이 앨범은 '대놓고' 레트로하다. 그렇다고 해도 '21세기 한국(혹은 앨범 제목처럼 서울)'의 음악으로써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야무지게 신선하다.

야광토끼는 이 앨범 [Seoulight]를 통해 21세기에 들어도 이질감이 없는 신선한 복고미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등장이 의미 있는 이유는, 좋은 앨범을 들려주었다는 것 이외에도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가지는 비교적 한정된 역할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어 그 빈자리에 정확히 안착했다는 점이다.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더욱 다양한 종류의 시도들이 생겨나고, 또 얼마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새로운 시도는 분명히 신선하다. 그리고 훌륭하게 새롭다. 그래서 야광토끼의 앨범은 의미가 있다. 명당자리에 성공적으로 포지셔닝한 그녀의 시도가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다양하다는 것은 멋진 일이 생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말이니까. 비단 여성 싱어송라이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음악씬에서 여러 뮤지션들의 역할과 위치가 자유롭고 다양하다고 만은 할 수 없기에 그녀가 열어준 가능성은, 그래서 긍정적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