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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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4. 12:35 카테고리 없음

<네티즌 리뷰> 아련한 기억의 끝자락을 잡아 온전한 추억으로 가슴속에 각인시키다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홍대 앞의 찬란한 "열정적 순간"을 노래하던 그들은, 어느새 충만함 감성의 "경이로운 시절"을 지나 달콤쌉싸름한 "진짜배기 맛"을 보여주었다. 그 궁극의 맛은 보드카 레인이라는 밴드 이름처럼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마법이 되어 밴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서 "한 템포" 쉬어가던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밴드가 가졌던 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명확한 몸짓으로 삶을 관조하는 힘, 자연스러운 태도로 기억을 되짚어가는 인내, 그리고 촉촉하게 머리를 적시는 비처럼, 그들은 외롭고 쓸쓸한 이 시대를 대신해서, 희미해져 가는 모든 것에 대해 조용히 긍정의 시선을 보낸다. 아니다. 사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단지 아련한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 그리고 불가항력일 뿐.

보드카 레인의 음악이 훌륭한 이유가, 그들의 작사/작곡 능력이나 연주 실력, 그리고 보컬의 개성 등 외면적인 것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물론 열거한 모든 것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항상 진지하지만, 그들의 음악에 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감정에 대한 집중", 그것이다. 열정과, 설렘, 그리고 여유를 노래하던 그들이 이번 앨범에서 청자에게 전해주고 싶어 했던 감정은 "한없는 쓸쓸함"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의 파편들을 효과적으로 잡아내어 온전한 형태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을 수 없는 희미한 기억에 대한 쓸쓸함을 들려주기 위해 앨범 전체를 통해 일관된 정서의 전달에 주력한다.

전달의 방식은 매우 일상적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들이 그간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모습들 중에서 가장 진지하고 관조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 그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그때 그 순간의 지나간 사랑, 지나간 시절, 지나간 감정이다. "보고 싶다"는, 듣고 싶다는, 만지고 싶다는 말 이외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Moment)"을 노래한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완벽하게 일관된 쓸쓸함과 그리움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절제되면서, 때로는 감정에 북받친 듯 차곡차곡 기억의 파편으로 쌓여간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어느 순간 온전히 청자의 추억이 되어 가슴속에 가득 찬다. 마치 또 한번 마법에 걸린 것처럼 가득 찬다.

이번 앨범은 보드카 레인이라는 밴드가 가지는 몇 가지 감정적 수식어 중 "쓸쓸함"에 대한 진지한 보고서와도 같은 느낌이다. 아련한 기억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쓸쓸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고민하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고민은 완벽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문제이다. 기억이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 돌아갈 수는 없다. 반대로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라도 절대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쓸쓸함에 대해 노래한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경이로운 시절의 열정과 설렘, 그리고 여유를 추억하며 이제 그들은 새로운 순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어떠한 변화와 진보와 다름이 있다고 할지라도, 진지하게 감정을 전달해주는 그들의 힘이 변치 않는 한, 나는 그들을 여전히 지지할 것이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