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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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12. 00:22 카테고리 없음

<선정의 변> 4월 2주, 이 주의 발견 : 국내 - 버스커 버스커 [1집 버스커 버스커]

우리는 가끔 대중성을 필요 이상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래서 대중성은 '보편적인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특성'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 '상업적인 의도에서 기획된 무언가'라는 상업성으로 이해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주 후보작들을 들으면서 긍정적인 의미의 대중성이라는 단어가 나의 머리속을 맴돌았다. 이들, 버스커 버스커의 음반은 매우 대중적이다. 그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가 주는 친근함은 물론, 매우 '대중적'으로 편곡된 노래들은 어떤 의미에서 상업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보편적이다. 우리는 그들의 가사가 주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풋풋한 감정에 공감할 수 있으며, 보컬의 독특한 목소리를 '좋다'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그간 우리가 조심스레 뒤켠으로 치워놓았던 대중성의 긍정적인 면을, 그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꺼내와 우리에게 들려주었다는 작은 사실이 이주의 발견에 선정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

  

"그대" 혹은 "너"라는 대상을 향한 신세기의 고전적인 고백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김정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티스트의 창작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폄하하던 소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다. 게다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가까스로 마지막 티켓을 손에 쥔 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티켓을 손에 쥐고 그들은 파이널 라운드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줬고, 음원이 발매될 때마다 큰 관심을 받았다. 누군가는 그토록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서바이벌 오디션을 거치면서 그들은 확실히 성장했고, 대중은 그들을 원했다. 그렇게 그들은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발매하게 되었고 결론은, 그 음반이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끔 그런 일이 있다. 뭔가 부족한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 그리고 가끔 그런 노래들이 있다. 대단치 않은 멜로디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입가에서 맴도는 그런 노래. 게다가 가끔은 그런 목소리가 있다. 듣는 순간 머리속이 이성적인 판단을 거부하면서 무방비 상태가 되는 그런 목소리. 이것이 버스커 버스커, 그리고 장범준이라는 보컬을 처음 접한 느낌이다. 가당치도 않게 "그대여"라는 한마디로 좌뇌의 기능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는 그런 목소리였다.



인트로까지 합쳐서 11곡이 수록되어 있는 이들의 첫 앨범은 분명히 완벽하지 못하다. 전곡의 작사/작곡을 담당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너무 대중적이면서도 일관된 편곡'이 앨범 전체에서 순기능을 담당했다고 보기 어렵고, 연주 실력이나 보컬의 능력 역시 수년간 단련된 밴드들이 보기에는 애들 장난 같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매력적이다. 뻔한 사랑 노래로 일주일이 넘도록 음원 차트 상위권에 전곡을 줄세우기(?) 할 수 있는 감성이 있다. 그것은 80년대의 애틋한 사랑 노래에서 느꼈던 감성이면서 동시에 90년대의 달달한 러브 송에서 받았던 느낌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경쟁의 도구로 만들어버린 21세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밴드가 노래하는 이 연애담은, 지극히 고전적이다. 보컬의 음색은 물론, 소박한 한글 가사, 특히 후렴구의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특정 단어의 나열은 심지어 구수하기까지 하다. '그대'와 '너'라는 단어를 적절히 사용한 가사의 내용은 보컬의 목소리와 맞물려 풋풋한 연애의 감정을 전해준다. 다시는 없을 지나간 옛 기억을 추억하게 만들어주고, 웃음지으며 가사를 음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오디션 천국이라는 신세기를 헤쳐 나온 이 밴드가 들려주는 '세련된 멋도 없고, 쿨하지도 않은' 다소 고전적인 고백들은 그렇게 청자의 마음을 심히도 흔든다. 물론 봄이라는 계절적인 특수 역시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마치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을 겨냥하고 나온 듯한 이 앨범. 생각보다 영리하기까지 하다.

기계음과 전자음에 지친 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들의 등장과 상관없이 어쿠스틱한 밴드 음악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토록 어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단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스타성과 기획사의 대대적인 홍보, 그리고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화제성만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그들의 음악에는 보편성이 있다. 가사 한 줄, 후렴구 한 마디만으로 청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힘을, 그들의 노래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노래 실력이 출중해서, 혹은 연주가 너무나 뛰어나서도 아니다. 그들의 노래엔 그런 '기술'적인 무언가를 뛰어 넘어 청자에게 자신들이 그린 세계를 온전하게 전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나의 추억은 아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느새 내가 가진 과거의 어느 기억과 겹쳐져 나의 추억이 되곤 한다. 화자와 청자의 소통의 과정에서 노래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그린 특수한 연애의 경험이 나와 우리의 보편적인 기억이 된 듯한 일종의 착각에 빠진다. 기분 좋은 착각 말이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걸어 놓고 싶은 그림' 같은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소망대로 그들이 노래하는 고백은 청자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기에 충분한 것 같다.



21세기, 수많은 음악이 쏟아지는 이 시기에 살짝 뻔한 청춘의 연애담을 노래하는 이들의 첫 번째 앨범에 대한 절대적이고 이성적인 평가는 살짝 뒤로 미뤄두고 싶다. "좋아 좋아"라고 외치는 노래 속 그들의 목소리가 정말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 펄떡이며 살아 있는 설레는 청춘의 마음에 오랜만에 동조해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 아닌가? 음악은 산수가 아니니까, 그리고 음악은 분석하지 않아도 즐거운 것이니까 말이다. 혹시 아나, 이들이 들려주는 이 연애담이 어느 순간 시대의 감성, 그리고 시대의 목소리가 될지?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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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버스커 버스커가 좋다. 취향만으로는 10점이라도 주고 싶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이성이 남아 있어서 8점을 주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지난번 <제8극장>의 음반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참으로 대중성이 폄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 예술의 첫마디가 <대중>이라는 사실,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의 대중성은 곧 보편성이라는 사실. 버스커 버스커를 통해 잊고 있던 그 사실이 새삼 생각났다.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