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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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5. 14:14 카테고리 없음

보통을 가장한 비범한 3인조의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치열한 완벽주의

강한 부정은 긍정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강한 긍정은 부정의 다른 표현일것이다. 언니네 이발관이 보여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도 그 역설적인 의미를 빌어 해석하자면, 매우 보통이 아닌 (혹은 그 보통과 차원을 달리하는) 일상의 감각을 자연스레 보여준 앨범이요, 또한 그들은 보통을 가장한 매우 비범한 3인조라는 말이 될수도 있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때, 놀랬던 것은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다. 전체적인 곡의 구성은 물론, 곡의 배치, 그리고 각각의 곡들에서 느낄수 있었던 것은 어느것 하나, 트집을 잡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보통의 존재의 삶과 사랑, 그리고 존재 가치에 대한 주제 의식, 그리고 곡 전반에 흐르는 그루브한 리듬 파트와 '기타톤' 하나까지 딱 맞는 톱니바퀴처럼 제단하여 마감질한 그 완벽주의. 물론 보컬 이석원의 목소리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명장면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은 단순히 편안한 마음으로 음반을 녹음하고, 반쯤 노는 기분으로 구성을 정해서 나오는 보통의 자연스러움이 아니었다. 보통을 가장한 비범한 3인조는, 자연스러움을 가장해서 가장 치열하고, 세밀하게 세공된 완성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음새를 찾을 수 없는 빛나는 골든볼처럼 "원래 그러한 것"과도 같이 "쿨"한 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쿨한척 되게 멋지다. 백조가 물에 떠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두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보통의 존재를 노래하기 위해 일상의 언어로 가장 일상적인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성된 이 앨범이 청자에게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웅장함도, 그렇다고 터질듯한 폭발력도 아닌, 일상과 보통이라는 감각으로 소름이 돋는 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을 가장해 그 어려운 일을 해냈고, 이 음반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그 보통의 존재에 대한 삶과 사랑, 그리고 존재 가치를 치열하고 세밀하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결국 그것을 일상의 감각으로 환원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90년대 홍대 밴드씬은 꽤나 흥미로웠다. 그곳에는 열정과, 감성과 그리고 많은 재능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그 수많은 영웅들중, 우리에게 동시대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은 바로 "언니네 이발관" 뿐이다. 이 앨범은 더이상 언니네 이발관을 "푸훗"을 노래한 밴드가 아니라, "인생은 금물"이라는 곡을 노래한 밴드로 만들어주었다. 여전히 델리스파이스는 "차우차우"로 기억되고, 자우림은 "헤이헤이헤이"로 기억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밴드는 더이상 지나간 90년대 홍대 앞의 영광속에 살지 않아도 될 만큼, 대단해졌다. 90년대에 언니네 이발관이 보여준 모습과, 지금의 <가장 보통의 언니네 이발관> 중 어느쪽이 더 좋은지는 취향의 차이로 남겨두자. 중요한건 밴드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는 것이니까. 가장 보통의 존재로써, 가장 일상의 감각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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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트에서 2000년대 베스트 앨범 100선을 뽑는데, 개인적으로는 언니네 이발관의 이 앨범, 혹은 My Aunt Mary의 <Just Pop>이 1위를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앨범 모두 10위안에 들기는 했지만, 1위는 장필순에게 넘겨주었다. 아쉬운 마음에서 작성한 글은 아니다. 다만,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때 짤막한 메모만 남겨 놓았던 것이 신경쓰여서 적은 것뿐. 사실 1위든 100위든 뭐가 그리 중요할까. 어차피 취향의 차이가 반일텐데. 하하.
posted by rubber.s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