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바늘.
rubber.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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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7. 02:27 카테고리 없음


나의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럽다고 느끼게 해주는 진심.

작년 첫 EP인 <옥탑라됴>를 통해서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알게 되었다. 아직도 인상적인 첫 감상의 어느 아침. 나는 그 음악속에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다행이라거나 축복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아침 이들의 노래를 들었을때 오랜만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은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감정을 조금 더 깊고, 실감나게 만들어 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나에게 이 감성을 곱씹어 볼수 있을 만큼의 지나간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옥상달빛의 음악이 그런 나의 추억들을 새삼 기억나게 해주었다는 것. 게다가 실감나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의 나(혹은 우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따사로운 볕과 가끔 그 햇빛을 가려주는 작은 그늘만 있으면 행복했다. 시덥지 않은 농담에 웃어줄 누군가가 있으면 마냥 좋았고, 싸구려 커피 한잔에도 즐거워졌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었고, 난 그런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이다. 물론 지금의 나와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혹은 우리)에겐 계산보다는 기분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많았다.

청아한 목소리와 보사노바부터 왈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송라이팅, 잔잔하지만 완급 조절, 그리고 해학과 아련함까지 두루두루 전해주는 옥상달빛은 분명 좋은 노래를 만드는 뛰어난 송라이팅 그룹이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도 흠잡을 곳 없는 이 두 여자의 진짜 실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아이돌 음악만큼 쏟아져 나오는 어쿠스틱/째즈 성향의 수많은 음악들, 특히 '여신'을 자/타칭하며 숱하게 등장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서 왠지 모를 '싸구려' 감성을 느꼈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좋은 음악들도 엄청나게 나왔지만, 아이돌의 홍수처럼, 여신들의 음악도 홍수였던 것은 틀림없다) 옥상달빛이 싸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장면에서도 이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진지하고, 또한 진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웃음의 순간에서도 이들은 성실하다. 성실하게 진심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전달된 진심이 청자에게 다가가서는 추억을 울린다. 마치 '너의 추억은 매우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하듯이 나의 지난날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많은 밴드들이 따스하고 행복한 순간을 노래한다. 따사로운 햇볕아래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저 넘어 창밖을 향해 달콤한 가사를 노래한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화자의 진심이며, 청자는 어디까지 감정을 이입하고 믿음을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 그리웠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의 추억으로 돌진하여 잊혀졌던 순간을 살려내는 진심이 그리웠다. 그리고 나의 추억이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달콤한 속삭임이 듣고 싶었다. 달지만 거짓이 아닌 그말이 말이다. 

그래서 옥상달빛의 음악은 좋다. 나에게 지나간 추억이 참 다행스러운 것이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 진심어린 배려가 마음에 든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또 예쁘고 즐거운 그들의 음악속에 그런 진심이 있어서 다행이다. 기교나 스타일따위의 것을 넘어선 그것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진 노래들. 그게 옥상달빛의 노래다. 아코디언과 실로폰 소리가 참 정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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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2010년 어느날,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난 이런 기분이었다.

옥상달빛을 처음 들었을때, 이어폰 속에 흘러나오는 감성은 90년대 홍대앞의 수수함이었다. 너무 포괄적인 감상평이 될수도 있으니,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한가한 토요일 오후 브런치를 빙자해서 학교앞 친구의 옥탑방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빵집에서 산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고는 햇빛 아래 그늘을 찾아서 담배를 한대 피며, 시덥지 않은 진담들을 나누던 그때가 떠오른다. 만일 나에게 옥탑방에 사는 그 친구가 없었다면, 그리고 한가로운 토요일과 따사로운 햇살이 없었다면, 그리고 시덥지 않은 진담에 귀를 기울여줄 누군가(들)이 없었다면 옥상달빛의 음악은 연휴가 끝난 화요일 출근길, 나의 감성을 이리도 자극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축복이요, 다행이라는 느낌. (2010.3.2)
posted by rubber.soul